(영화소개) 에어 : 112분짜리 나이키 광고 영화라고? 아닙니다
▲ 영화 <에어>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 영화 <에어>의 스포일러(실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이야 모르는 사람이 없는 전 세계 스포츠용품 1위 기업인 나이키는, 타사와의 경쟁이 한창이었던 1980년대 초중반, 회사의 사운을 당시에는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한 선수에게 맡겼다. 그리고 그 선수는 '농구의 황제'가 됐으며, 은퇴 이후에도 나이키에서 지급하는 어마어마한 개런티를 받고 있다. <에어>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성장한 신발의 역사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된 '에어 조던'의 탄생 과정을 담아낸 작품으로, 언뜻 보면 112분짜리 나이키 광고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미국의 가치(시장 경제 원리와 자유, 그리고 가족애 등)를 가장 잘 보여주는, 그렇기에 할리우드만이 해낼 수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에어>의 중심인물은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아닌, 나이키의 농구화 부서를 업계 최고로 만들기 위해 고용된 스카우터 '소니 바카로'(맷 데이먼). 그는 나이키의 새로운 농구화 브랜드 모델을 찾던 중 NBA에 한 번도 뛰어본 적 없는 신인 선수, 마이클 조던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NCAA 파이널'에서 대학 새내기 선수가 오픈 찬스에서 과감한 결승 슛을 지체 없이 쏘아 올린 것을 반복해서 본 '소니 바카로'는 나이키 사장 '필 나이트'(벤 애플렉)에게 농구화 부서의 모든 예산을 마이클 조던에게 올인하자고 제안한다. 평소 최상위 선수가 아닌 2~3명의 선수와 스폰서십을 맺었던 상황에서 '필'은 당연히 반대했으나, '소니'의 뚝심을 보며 '불가능해 보이는 계약'에 최종 승인을 해준다.
'불가능해 보이는 계약'이라 표현한 것은 당시 나이키 농구화 점유율이 그렇게 높지 않았기 때문. 20세기 초부터 미국 농구화 시장을 주름잡았던 브랜드는 '컨버스'였고, 그 뒤로 '아디다스'가 후발 주자로 미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대표적인 농구 선수(래리 버드, 매직 존슨 등)들은 두 브랜드 쪽에 더 열광해 있었고, 마이클 조던은 고등학교 선수 시절부터 '아디다스'만을 고집했다. '소니'는 마이클 조던의 에이전시 대표 '데이비드 포크'(크리스 메시나)의 허락도 없이 직접 마이클 조던의 어머니 '델로리스 조던'(비올라 데이비스)을 만난다. 컨버스, 아디다스와의 미팅 과정에서 일어날 일들을 예측하면서 '소니'는 '델로리스'에게 미팅 기회를 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델로리스'는 나이키를 탐탁치 않아 하던 마이클을 설득해 나이키와의 미팅에 참여하기로 한다. 그사이 '소니'는 마케팅 임원 '롭 스트라서'(제이슨 베이트먼)와 농구 부서 선수 책임자 '하워드 화이트'(크리스 터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내며, 1주일도 안 되는 기한 내에 마이클 조던에게 제안할 '에어 조던'의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당시 NBA에서 규정한 농구화에는 흰색이 51% 이상 보여야 했으나, '에어 조던'은 검정과 빨강으로 마이클 조던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했고, 나이키가 매 경기 5,000달러 벌금을 물어가며, 마이클 조던이 에어 조던을 신고 경기를 뛰게 했다.)
여러 조건이 마음에 들었던 마이클 조던은 나이키와 계약하기로 했으나, 아들의 가치를 확신한 '델로리스'는 이례적인 조건을 제안한다. 1984년 당시만 하더라도, '판매 수익금 배분'은 스포츠 브랜드와 운동선수의 계약 조건에선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이키는 수익금의 5%를 마이클 조던에게 배분하는 파격적인 조건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렇게 마이클 조던은 '에어 조던'이라는 브랜드로 그야말로 '억만장자'가 됐다.(2015년, 그는 포브스가 집계한 세계 억만장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첫 번째 스포츠 선수가 됐다)
사실, 이렇게 뻔한 성공담을 그린 영화는 진부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이었다면 눈물도 흘리게 했을 신파 요소도 섞었을 것이고, 갖은 고난은 '엄청난 뻥튀기'가 되어 관객의 머리를 갸웃거리는 연출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벤 애플렉 감독은 스포츠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1980년대의 낭만'으로만 그려내지 않았다. 도입부에서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매킨토시 광고 <1984>, MTV용 뮤직 비디오 가수만 넘쳐나고 있다는 것을 비판한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Money for Nothing'을 삽입하면서, 낭만보다는 '현실적 흐름'을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눈에 선명하게 비쳤다. 그로 인해 '광고 영화'라는 오명, 혹은 비아냥도 훌훌 털어버린다.
이미 벤 애플렉 감독은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아르고>(2012년)를 통해서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을 소재로, 실제 사건의 어두운 톤을 바탕으로 유머를 적절히 섞으면서 관객의 몰입을 유도했다. 이번 <에어> 역시 왕년의 코미디 액션 배우 크리스 터커를 중심으로 한 배우들의 유머가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숨구멍을 만들어 놓으면서, 단순한 다큐멘터리의 재현을 스스로 거부하는 연출을 보여줬다. 그리고 영화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의 신의'임을 역설한다. '소니'와 '델로리스'가 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나, '소니'가 '필'을 계속해서 설득하는 장면은 '비즈니스 관계'에서 펼쳐지는 '신의'를 돌아보게 해준다.
한편, <에어>는 배우가 직접 농구를 하는 장면은 하나도 없지만, '소니'의 발표 장면에서 나오는 푸티지를 통해 모든 감정을 표출해냈다. 마이클 조던의 열렬한 팬이라면,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 최후의 순간을 보여주는 것처럼 짜릿한 광경을 목도할지도 모르겠다.
by 알지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