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소개) 슬픔의 삼각형 - 초호화 크루즈에 해적이 나타나면서 벌어진 일
▲ 영화 <슬픔의 삼각형> ⓒ 그린나래미디어(주)
지난해 칸영화제의 최고 영예, 황금종려상을 받은 <슬픔의 삼각형>은 3장 구조로 진행된다. 1장은 '칼 & 아야'로, 모델 '칼'(해리스 디킨슨)이 다른 남자 모델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과정으로 시작된다. '칼'은 모델이자 인플루언서인 '아야'(샬비 딘)와 사귀고 있었는데, '아야'가 자신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음에도 불구하고 식사 비용을 자신, 그러니까 '남성'이 내는 것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었다. 이내 두 사람은 돈과 성 역할에 대해서 말다툼한다. '야야'는 순전히 SNS 때문에 '칼'과 관계를 맺고 있었고, 이 일이 끝나면 자신이 '과시용 아내'가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1장이 '칼'과 '야야'를 통해 성역할의 고정관념을 전복시키려 했다면, 2장 '요트'는 초호화 크루즈를 배경으로 한 부자들의 위선과 치부를 고발한다. '칼'과 '아야'는 SNS 홍보의 대가로 크루즈에 탑승하게 됐는데, 부유층으로는 비료 사업으로 돈을 버는 일명 '똥팔이', 러시아 부자 '디미트리'(즐라트코 부리치)와 아내 '베라'(수니 멜레스), 무기 제조로 부를 쌓은 노부부 '클레멘타인'(아만다 워커)과 '윈스턴'(올리버 포드 데이비스)이 있었다. 여기에 뇌졸중 후에 독일어로 한 문장만 말할 수 있는 '테레즈'(아이리스 베번)와 '야야'에게 찝쩍대는 외로운 백만장자 '자르모'(헨릭 도르신)가 있었다.
승무원 대표인 '폴라'(비키 베를린)는 변덕스럽고,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는 승객들의 '명령'에 따를 것을 직원들에게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한 승객은 주방장이 음식이 상할 것이라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방 직원들까지 수영을 하라고 명령한다. '칼'도 '폴라'를 만나 '아야'에게 매력이 있다고 언급한 선원에 대한 클레임을 주고, '폴라'는 즉시 그 선원을 해고한다. 정작 그 시간에도, 크루즈 선장(우디 해럴슨)은 그의 방에서 술에 취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날 밤 열린 만찬은 폭풍우가 치는 한 가운데에서 열렸는데, 상한 음식과 뱃멀미로 인해 승객들은 구토를 하고, 설사를 하는 등 공황 상태에 빠진다.
다음 날 아침, 상황은 더욱 심각해지는데, 해적들이 나타나 '클레멘타인' 부부를 수류탄(심지어 '클레멘타인'의 회사에서 만든 것이다)으로 죽이더니, 요트는 전복되고 만다. 3장 '섬'에서는 크루즈 안에 있었던 7명 만이 살아남은 가운데, 계급이 전복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모델, 부자와 달리 계층 피라미드의 밑바닥에 있는 필리핀계 여성 청소부 '애비게일'(돌리 드 레옹)이 돈이 소용없어진 무인도에서 '캡틴'이 된 것. 마치 인류가 농경하기 전인 수렵 사회에서, 여성이 정치와 경제적 우위를 가졌다는 '원시 모계 사회'를 연상케 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슬픔의 삼각형>을 연출한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최근 작품들에는 묘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심사위원상 수상작,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2014년)에서는 알프스산맥에 있는 스키 리조트에서 '토마스'(요하네스 바 쿤게)가 눈사태를 본 후 가족을 구하지 않고 혼자 피신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문명화된 현대적인' 남성이 '자연'에 직면하게 되는 모습을 그려냈는데,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남자는 아내와 가족의 수호자가 되어야 하며, 어떤 위험 앞에서도 도망치지 말아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에 대해 더 깊게 파헤치고자 했다"라고 언급했었다.
루벤 외스틀룬드의 다섯 번째 장편이자, 첫 번째 칸영화제 황금 종려상 수상작인 <더 스퀘어>(2017년)는 현대인들의 위선과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로 대표되는 이중성을 꼬집은 영화다. 주인공 '크리스티안'(클라에스 방)뿐 아니라 다양한 인물을 통해 '난민'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유럽인들의 '속내가 드러난'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신뢰와 배려의 성역이자, 모두가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지닌다는 '더 스퀘어'라는 공간을 유럽으로 확대해 해석해서 볼 수도 있었으며, '서프 플롯'의 논점으로 "현대미술의 추상적인 관점이 대중들에게는 어떻게 다가올 수 있는가?", 그리고 "예술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봐야 하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최근 세 작품은 공통으로 현대의 남성성을 탐구했는데, 이번 작품 역시 그랬다. 1장에서 나오는 '칼'의 모습이나, 2장에 등장하는 '디미트리'와 선장의 술자리 '명언 배틀', 그리고 3장에서 그 부자들이 원시인들처럼 수렵에 나서는 장면에서는 '딜레마에 처한 현대 남성'이 연달아 등장한다.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세 영화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자신에게 사람들이 기대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한다. 그런 다음 그들은 자신이 어떻게 행동할지 알아보기 위해 스스로 함정에 빠진다"라고 이야기한다.
세 편의 영화는 스스로 캐릭터에게 딜레마를 설정하고, 궁지에 몰아넣는 방식을 사용하면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내가 이런 상황에 처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이 쉽다면 흥미롭지 않겠지만, 이 작품에서 답은 매우 어렵고, 덕분에 관객은 흥미로움을 느낀다. 제목으로 돌아가, 본래 '슬픔의 삼각형'은 뷰티 업계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눈썹 사이의 주름을 의미한다. 어느 날,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친구가 파티에서 '성형외과 의사' 옆에 앉아 "슬픔의 삼각형이 꽤 깊게 파였지만, 보톡스로 15분이면 고칠 수 있다"라는 말을 들었고, 패션 사진작가인 감독의 아내를 통해서 남성 모델의 수입이 여성 모델의 수입의 3분의 1밖에 안 된다는 비화를 들으면서, 시나리오를 써 내려갔다고.
그렇게 영화는 패션모델을 통해, '아름다움의 경제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으로 출발했다. 외모가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불평등'할지 몰라도, 인간이 근본적으로 관심 두는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최근에는 이 외모가 더 중요시해졌다. 콘텐츠 범람의 시대에서, 누군가의 심오한 생각을 '읽을 여유'조차 없어졌고, 이것이 이미지의 힘이라고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생각했다. 그리고 남성 모델이 된다는 것이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일과 비슷하다는 것을 떠올리며, 1부에서 성 역할과 행동 기대치 문제를 다뤘던 것.
이 이야기에 덧붙여 영화는 2019년 칸영화제 황금 종려상 수상작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덧붙였다. <기생충>은 반지하와 지하실로 자본 계층의 문제를 짚어냈는데, 이 작품은 고립된 한 집단에서 나오는 '인간 행동의 모순'을 추가했다. 또한, 이 집단에는 1부와 2부에 등장하지 않았던 흑인 캐릭터(기관실 직원)를 추가, 이 캐릭터를 계속해서 '해적'이라고 의심하는 백인 부자의 모습을 통해 '인종의 선입견'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를 제공했다. 결국, <슬픔의 삼각형>은 영화가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특히 표현의 자유를 믿지만, 문화적 표현이 초래할 수 있는 결과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감독이 만들어 낸 영악한 작품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