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9. 12:17ㆍ사회뉴스
2주 이용료로 2500만원까지 받는 서울 강남 최고급 H산후조리원에서 신생아 5명이 동시에 RSV(호흡기 세포 융합 바이러스)에 감염돼 산후조리원 안전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배우 전지현씨가 이용한 사실이 공개되면서 유명해진 곳이다.
8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일 이곳에 머물던 신생아 12명 중 5명이 RSV에 집단감염돼, 3명은 인근 대형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다. H조리원은 모든 입소자를 퇴소시키고 임시 휴원했다. 방역 당국은 다른 감염자 확인과 더불어 모자보건법 위반 사항이 있는지 조사하고 있다.
산후조리원 집단감염은 해마다 되풀이된다.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복지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18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5년간 2045명이 산후조리원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절반 이상(1165명)이 신생아였다. 이렇게 집단감염이 잦은 것은 면역력이 약한 산모와 신생아가 ‘한곳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가장 흔한 산후조리원 집단감염은 RSV와 로타바이러스. 둘 다 통상 유아 시절 한두 번 가볍게 겪으면서 면역력이 쌓이지만 신생아 시절 걸리면 심각한 위험에 빠질 수 있다. 10월부터 이듬해 3월 주로 발생하는 RSV는 영유아에게 모세 기관지염이나 폐렴 등을 일으킬 수 있다. 로타바이러스는 급성 설사, 고열과 탈수를 일으킨다. 빨리 조치하지 않으면 하루 만에 숨지기도 한다.
지난해 11월 경기도 용인의 한 산후조리원에서는 신생아 11명이 RSV에 감염됐고, 2015년 서울 은평구 산후조리원에서는 신생아 30명이 잠복 결핵 확진 판정을 받았다. 2018년 서울 동작구 산후조리원에서는 신생아 23명, 산모 2명, 직원 6명이 RSV에 걸렸다. 2001년 경기도 고양의 산후조리원에서는 신생아들이 구토와 설사 증세를 보이다 숨지는 일도 있었다.
감염 온상이 될 위험이 있지만 산후조리원 이용률은 해마다 늘고 있다. 복지부 ‘2021 산후조리 실태 조사’에 따르면 산후조리원 이용률은 2018년 75%에서 2021년 81%로 높아졌다. 국내 출산 문화에서 산후조리원을 당연히 이용하는 시설로 인식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산후조리원은 산모 생활 관리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집단감염에 취약하다. 신생아는 기저귀를 수시로 갈아야 하는데 직원들이 손 씻기 등 위생 관리를 철저히 하는지도 의문이다. 마상혁 창원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장은 “밤이 되면 산모를 푹 자게 해주려고 아기들을 신생아실에 모아 재운다”며 “엄마는 좋을지 모르지만 아기는 항상 감염될 수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소아과 전문의들은 출산해도 산후조리원에 잘 안 간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번에 집단감염이 발생한 H조리원은 2주 이용료가 특실 최고 2500만원이고, 일반실도 980만~1500만원이다. 호텔급 시설과 산모 맞춤형 식단, 1대1 체형 관리 등 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감염은 막지 못했다. 보건 당국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출산 후 산모가 집에서 조리할 수 있도록 돕는 쪽으로 지원 정책도 펼친다. 산후 도우미가 집을 방문해 돕고, 신생아도 돌봐준다. 하지만 휴일이나 야간엔 산후 도우미 서비스를 받기 어렵다.
복지부는 2020년 모자보건법 시행령을 일부 개정해 산후조리원 질병 관리 규정을 강화했다. 감염병에 걸렸다고 의심되는 산후조리원 종사자는 즉각 격리 조치하고, 격리와 환자 발생 등 보고를 이행하지 않으면 행정 처분을 내리는 내용이다.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그 산후조리원을 폐쇄한다.
김윤경 고려대안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산후조리원은 의료 기관이 아닌 (식당 같은) 다중 이용 업소로 분류되기 때문에 감염 차단 조치가 미흡하고, 감염 사고가 나도 가벼운 처분에 그친다”며 “안전 관리를 의료 기관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법령 기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했다.
산후조리원에서 모자(母子) 별실이 아닌 동실로 운영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미 질병관리본부(CDC), 세계보건기구(WHO), 미국소아과학회 등 국제기구들은 감염을 막기 위해 가장 이상적으로 신생아를 돌보는 환경이 ‘산모의 방’이라고 했다. 엄마가 마스크를 쓰고 손을 잘 닦으면서 적절하게 예방하면 집단감염 위험은 훨씬 줄어든다는 것이다. 2014년 경북 경주의 한 산후조리원에서 신생아 22명이 RSV에 집단감염됐을 때 모자가 방을 같이 쓴 3명은 감염되지 않았다. 김윤경 교수는 “(산후조리원) 여건상 쉽지 않겠지만 신생아 감염 예방을 위해서도 산후조리원에서 모자 동실을 적극 권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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