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소개) 카일리 블루스 - 중국 영화에서 만날 수 있었던 놀라운 감각

2023. 5. 25. 20:03문화

728x90
반응형
728x170

탕웨이 주연의 <지구 최후의 밤>(2018년)으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되면서 주목받았던 중국 감독, 비간의 연출 데뷔작 <카일리 블루스>(2015년)가 드디어 국내 관객을 만났다. 지난 2015년 41회 서울독립영화제와 2021년 26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서 첫 선을 보이긴 했지만, 국내에 정식으로 개봉한 것은 이번이 처음. <카일리 블루스>는 과거, 현재, 미래가 꿈결처럼 공존하는 곳으로 여행을 떠난 남자의 이야기다. 겉으로는 의사 겸 시인의 삶을 살고 있는 '천성'(진영충)이 사라진 조카 '웨이웨이'(페이양 루오)를 찾아 떠나는 간단한 로드 무비의 형태를 띠고 있다.

하지만 <카일리 블루스> 제작 당시 불과 26살이었던 비간은 시의 리듬을 적극 차용하고, 시공간의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 도전적 결단으로 첫 작품부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확고히 구축해 냈다. 또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걸작 <잠입자>(1979년)의 원작이자, 동구권 최고의 SF 소설로 손꼽히는 <노변의 피크닉>에서 원제(<노변야천>)를 따온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 타르코프스키, 허우샤오시엔, 빔 벤더스, 카를로스 레이가다스 등 위대한 시네아스트들로부터 받은 영향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재조합해 냈다.



여기에 중화권 최고의 영화감독 허우샤오시엔과 지아장커의 페르소나, 임강 작곡가가 흔쾌히 작품에 참여해 카일리시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먀오족의 전통 악기 '루성'을 활용한 신비롭고 독창적인 음악으로 힘을 보탰다. 그렇게 <카일리 블루스>는 최근 애국주의 관련 영화들이 박스오피스를 장악하는 중국 영화 흐름에서 '돌연변이 같은 위치'를 차지한 작품이 됐고, 이는 <지구 최후의 밤>에서 더욱 확고해졌다.

다시 비간 감독(이자 시인이기도 하다)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1989년 구이저우성 카일리에서 태어난 그는 천카이거와 장예모가 속한 5세대, 지아장커로 대표되는 6세대 이후 중국 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낼 선두 주자로 꼽히고 있다. 사회 문제에 주목했던 이전 세대의 중국 영화 감독들과는 달리, 개인의 내면에 더욱 집중하고 모호한 꿈과 기억의 문제를 시적으로 영상화하는 차별점으로 일약 화제의 중심에 선 것. 특히 어린 시절 지켜보던 카드 게임의 리듬에서 착안한 롱테이크 촬영 기법은 다양한 경계를 허무는 데에 경이롭게 활용되며 비간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 잡았다.



비간 감독은 "'천성'이라는 인물을 연기한 나의 삼촌, 진영충 배우는 내가 영화를 공부하면서 만든 다른 작품들에서도 주연을 맡았다"라면서, "나는 그의 복잡하고 광범위한 삶의 경험에서 영감을 받았다"라고 입을 열었다. 진영충은 한때 삼합회에 엮인 적도 있고, 미얀마에서 도박장을 운영하다가 감옥에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공장에서 일하면서, 평범하면서도 고독한 삶을 살고 있다. 비간 감독은 "이렇게 복잡다단한 과거 때문인지, 진영충 배우에게서는 뭔가 알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졌다. 성격적인 면에서도 참 재미있는 구석이 있다. 카메라 앞에서 몸짓으로 감정이나 표현을 전달할 때 약간 어색해 보이는 모습이나 특유의 쓸쓸함도 매력적"이라고 이야기했다.

이어 비간 감독은 "영화에서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것은 나의 진외종조부께서 돌아가셨을 때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할머니의 남자 형제께서 전위안에서 돌아가셨을 때, 카일리에 살고 계시는 할머니는 시신을 화장할 때 입히는 종이 수의를 사셨지만, 건강이 많이 안 좋으셔서 직접 장례식에 가지는 못하셨다"라면서, "이때의 경험을 '천성'이라는 인물에게 투영했다. 영화에서 '천성'은 한 여성 노인의 부탁을 받고 어떤 물건을 전달하러 간다"라면서, 다른 영감 포인트를 설명했다.



참고로 비간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인 '롱테이크'는 2011년 대학에 졸업한 감독이 생활비도 벌고, 영화 프로젝트 비용도 대기 위해서 1년 동안 카일리에서 결혼식 영상 촬영을 하면서 습득한 것이라고. 비간 감독은 "결혼식을 촬영하는 것이 우리만의 영화를 촬영하는 작업과 가장 비슷할 거로 생각했다"라면서, "결혼식 피로연을 촬영할 때 카메라를 들고서, 테이블마다 돌며 하객들과 건배하는 신랑 신부를 따라다녔다. 그런 식으로 롱테이크로 촬영하니까 굉장히 꿈 같고 자유로운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시와 아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라면서 '롱테이크'에 대한 비하인드를 이야기했다.

한편, 각본을 쓰는 과정에 대해서 "등장 인물들에게 편지를 쓴다고 상상해 본다"라면서, "그러고 나서 그들에게 답장받는다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보는 것이다. 이렇게 하니까 그들의 삶과 성격, 표정을 창조해 낼 수 있었다. 각본 작업을 하는 내내, 내가 달에서 건물을 지으러 지구로 온 거라는 상상을 자주 했었다. 그러면 지구 바깥의 존재니까 지구인들이 생각하는 세속적인 가치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라고 언급했다. 이어 감독은 "건물이 상업적으로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평당 가격은 얼마인지, 아니면 위치가 좋은지는 상관하지 않는 것"이라면서, "대신 건물의 자재와 구조, 스타일이 내게는 가장 중요하다"라는 예시를 들었다.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