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의 한국 상륙기
2022. 10. 4. 23:48ㆍ카테고리 없음
728x90
반응형
728x170
프리즈가 서울에 상륙했다. 한국 미술계를 뜨겁게 달구며 세계적인 갤러리와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프리즈 서울 2022. 이 4일간의 글로벌 아트페어는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소식 들었어요? 프리즈 아트페어가 서울에서 개최된대요!” 작년, 아트 피플 사이에서 이런 이야기가 돌았을 때만 해도 사실은 반신반의했다. 프리즈 아트페어가 서울에? 그들이 서울을 선택할 이유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프리즈는 2003년 영국 런던에서 첫 행사를 시작 했으며, 프랑스의 피아크, 스위스의 아트 바젤과 함께 세계 3대 아트페어로 손꼽힌다. 아트 바젤의 역사가 1970년대부터 시작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폭풍 성장한 슈퍼 루키인 셈이다. 또한 그 출발점이 아방가르드 전시회이자 미술 전문지 였다는 점에서 ‘프리즈 정신’이라는 비물질적 자산도 갖고 있다. 1988년, 영국 yBa 출신의 젊은 예술가 16명이 런던 변두리의 빈 창고를 빌려 전시를 연다. ‘꼼짝 마(Freeze)!’라는 강렬한 제목(경찰이 범인을 검거하거나 체포할 때 “freeze!”라고 말한다)으로 열린 전시는 당시 영국의 제도권 혹은 주류 미술에 저항하는 정신으로 똘똘 뭉친 작품들로 구성되어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이 전시를 흥미롭게 지켜본 미술평론가 매슈 슬로토버가 당시 리더 격 아티스트였던 데미언 허스트를 인터뷰한 기사를 실으며 야심차게 창간한 미술 전문지가 바로 <프리즈(Frieze)>다. 이윽고 프리즈는 현대미술을 파노라마처럼 조망하겠다는 포부가 담긴 단어로 현대미술사에 거듭나게 된다. 2003년 런던의 리젠트 파크에서 첫 번째 아트페어를 개최할 당시부터 글로벌 아트 마켓을 타깃으로 삼았고, 곧 그 결실을 거두어 2012년 뉴욕에 진출했다. 올해 개최된 프리즈 서울은 런던, 로스앤젤레스, 뉴욕, 마스터즈에 이은 프리즈의 다섯 번째 페어다.
프리즈는 왜 한국을 선택했는가
사실 프리즈가 서울에 상륙한다는 소문은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있었다. 다만 ‘그 대단하고 콧대 높은 아트페어가 왜 서울을 선택하겠는가’에 대한 의구심은 남은 상태였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영국, 스위스, 프랑스, 미국 등 유럽과 북미 중심으로 출범해 재편된 아트페어들은 하나둘씩 아시아로 시장을 확장해나가는 행보를 보여왔다. 가장 대표적인 성공작이 바로 홍콩 아트 바젤. 마이애미와 파리에 이어 2013년 출범한 홍콩 아트페어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며 아트 바젤은 그들 자신조차 놀란 아시아 미술시장의 잠재력을 발견하게 된다. 세계적인 미술시장 조사 기관인 아트프라이스에 의하면, 전체 미술시장 중 아시아가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40%다. 이에 프리즈 역시 차기 아시아 개최 도시를 물색하게 되는데, 일본이나 중국 혹은 싱가포르를 제치고 서울을 선택한 점은 의외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한국 미술시장의 잠재성을 높이 평가했다는 지표는 최근 서울에 속속 상륙한 글로벌 톱 갤러리의 지점으로도 가늠해볼 수 있다. 리만머핀, 쾨닉, 타데우스 로팍, 글래드스톤 등 해외 유명 갤러리들이 몇 년 전부터 한국에 지점을 연 바 있다. 사실 한국의 미술 컬렉터들은 규모나 프로필이 베일에 싸여 있다. 갤러리 사이에서도 워낙 영업 기밀이다 보니 좀체 노출이 되지 않는다. 다만 생각보다 글로벌 ‘큰손’들이 꽤 존재하며, 최근 특히 2030 신흥 부자들을 중심으로 기존 컬렉터와의 세대교체가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등이 알려져 있다. 한편 같은 시기에 함께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이하 ‘키아프’)는 한국 화랑협회에서 주최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아트페어다. 2002년부터 시작되었으며, 작년에 20주년을 맞이했다. 국내에서 개최되는 아트페어 중 규모와 라인업 면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다. 다만 키아프만의 뚜렷한 색깔이나 방향성이 있다기보다는 화랑협회 회원 갤러리들이 참가할 수 있는 가장 크고 오래된 ‘장터’라는 인식이 보편적이다. 키아프의 성패 역시 페어의 전략이나 비전 보다 매해 국내 미술시장의 전망에 좌지우지된다. 예를 들어 작년의 경우 역대 최고 매출인 650억원을 기록했다고 집계됐는데, 이 역시 키아프 자체에 대한 인지도가 상승했다기보다는 미술시장의 팽창이 반영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옳다. 실제로 지난 십수 년간 4000억원(해외나 아시아 마켓 혹은 국내의 다른 산업에 비교했을 때 턱없이 작은 수준의 규모다) 근처에서 정체되어 있던 한국 미술시장 거래액은 2021년 9000억원을 돌파했다. 그렇다면 프리즈는 왜 단독으로 개최하지 않고 키아프를 파트너로 선택했을까? 프리즈와 키아프는 올해를 포함하여 5년간 공동 개최에 합의했다. 추측하건대 도움이 될 수 있는 파트너로 서로를 선택했을 것이다. 프리즈 입장에서는 처음 진출하는 서울이라는 아시아 도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예측 불가능한 리스크를 줄이고 홍보 효과는 높이는 수를 노렸을 테고, 키아프 입장에서는 관람객이 상승하는 효과를 기대했을 것이다. 다만, 이렇게 공동 개최된 아트페어에서 골리앗에 맞서 손해 없는 장사를 해야 할 몫은 고스란히 국내 갤러리들에게 돌아갔으며, 키아프 역시 행사 전반에 걸쳐 프리즈와 비교를 당하는 운명을 감내하게 됐다.
1 배혜윰 ‘Table-turning’, 2020. 2 타바레스 스트라찬 ‘Kojo’, 2021. 3 이다 유키마사 ‘End of today’, 2021. 4 박현기 ‘Untitled(무제)’, 1988.
1 피룰 달마 ‘Sunny, your smile ease the pain’, 2019. 2 ‘THE 8 × 제프 쿤스’ 한정판 스페셜 에디션. 3 오종 ‘Line Sculpture #24’(부분), 2022. 4 로이 리히텐슈타인 ‘Profile Head’, 1988. 5 파블로 피카소 ‘Femme au beret rouge à pompon’, 1937. 6 ‘De Jode’, 1593.
프리즈 서울 2022의 이모저모
올해 프리즈 서울 2022에는 패트릭 리 총괄 감독의 주도 아래 사무국의 심사를 통과한 20여 개국의 110여 개 갤러리가 참가했다. 가고시안, 글래드스톤, 하우저앤워스, 리만머핀, 화이트큐브, 타데우스 로팍, 데이비드 즈위너 등 세계 최정상 갤러리들이 모인 가운데 한국에 지사가 있는 갤러리들도 눈에 띄었다. 한국에서는 국제갤러리, 아라리오 갤러리, 갤러리 바톤, 조현화랑, 원앤제이 갤러리, PKM 갤러리, 리안 갤러리 등 규모와 역사를 자랑하는, 이른바 ‘체급’이 맞는 갤러리들이 함께했다. 쇼는 충분히 재미있었다. 그럴 수밖에! 글로벌 아트페어의 최대 수혜자는 아마 관람객일 것이다. 개방된 시장 덕분에 볼거리, 즐길거리가 대폭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해외 참가 갤러리들이 선택한 작품을 통해 역으로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 미술 컬렉터의 취향과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첫 페어의 전략으로 4번 타자들을 선발했다는 인상이 강했다. 안소니 곰리, 줄리언 오피, 아니쉬 카푸어, 조지 콘도, 게르하르트 리히터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가져오되 한국인들에게 이미 알려진, 너무 어렵거나 아방가르드한 작품은 피했다. 행사 기간 앞뒤로 끊임없이 열린 명품 브랜드, 대기업, 갤러리들의 크고 작은 파티와 부대 워크숍 덕분에 미술계는 코로나19 이후 모처럼 축제 분위기로 들썩였다. 누가 이런 분위기를 마다하겠는가? 한편 키아프는 프리즈를 의식하고 신경 쓴 기색이 역력했다. 참여 갤러리에서 간판 소속 작가들의 작품을 대거 공수한 것은 물론 신작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산뜻한 작품들도 다양하게 소개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동안 키아프에서는 ‘복붙복’ 수준의 부스를 몇 해째 고수하는 갤러리들도 있어 한국 최고의 아트페어임에도 볼거리가 없다고 느낀 관객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행사 기간 동안 많은 아트 피플이 프리즈 마스터스(Frieze Masters)에 대해 언급했다. 프리즈는 매번 ‘마스터스’라는 이름의 섹션에 고전 미술품을 출품함으로써 여타 아트페어와는 차별화되는 고급 전시회를 개최하는 전략을 통해 ‘프리즈 정신’의 신화를 이어왔다. 아트페어임에도 불구하고 감독을 선정한다는 발상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프리즈 서울 2022에는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데이비드 호크니 등 유명 거장들의 작품이 출품됐는데, 특히 리차드 내기 갤러리 부스에서 선보인 에곤 실레의 작품 40점을 보기 위해 긴긴 줄이 연일 이어지기도 했다.
프리즈 서울 2022가 우리에게 남긴 것
지난 9월 초 막을 내린 프리즈 서울 2022, 과연 어떤 성과를 가져왔을까? 일단 공식적으로 발표된 매출 규모는 없다. 방문객이 7만 명 이상이라고 알려지긴 했지만, 두 주최측 모두 판매액을 발표하지 않았다. 다만 프리즈에서 행사 기간 동안 팔려나간 작품 금액만 대충 계산해도 작년 키아프 매출액을 능가한다. 실제로 첫날부터 수억,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유명 작품들이 속속 팔려나가 주최측에서는 쾌재를 불렀다고. 그들이 평가한 한국 컬렉터의 잠재력은 틀리지 않았던 셈이다. 결과가 이러하니 일각에서는 체급이 다른 두 아트페어가 붙어 키아프가 ‘골목 상권’으로 전락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아트페어는 미술계를 형성하는 시장의 (큰) 일부일 뿐이다. 다만 프리즈 서울 2022의 결과를 분석하며 그들이 어떤 ‘리트머스 결과지’를 남겼는지를 살펴볼 수는 있을 것. 냉정하게 말하자면 한국 컬렉터의 경쟁력은 증명 됐지만, 국내 갤러리나 작가들의 경쟁력은 위기론을 야기하며 물음표를 남겼다. 그렇다고 우리는 모두 패배한 것인가? 혹은 이것이 이기고 지고의 문제에 불과한 것인가? 개인적으로 프리즈 서울 2022에서 유독 ‘미술평론적 가치’를 발견했던 두 가지 순간이 있다. 첫 번째는 한국 갤러리 원앤제이에 출품된 오종 작가의 작업에 대해 해외 매체인 ‘아트넷’이 집중 조명한 기사. 평소에도 날카로운 미감과 깊이 있는 예술 철학이 묻어나와 흠모해온 작가와 작품이었다. 두 번째는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연계 행사로 마련한 스튜디오 방문 프로그램을 통해 신미경 작가의 스튜디오를 방문한 해외 기자들의 열띤 반응이었다. 그동안 한국에서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한국에 있는 좋은 작가들을 해외에 알릴 방도가 너무 없다’는 점인데, 이번 아트페어에서 두 순간을 마주하며 모종의 뿌듯함을 느꼈다. 시장은 냉정하다. 단순히 잘 팔리는 가의 문제를 떠나 ‘진짜 가치’와 아닌 것을 알아보게 하는 순기능도 존재한다. 이렇듯 엉겁결에 글로벌 아트 마켓에 한국 미술시장을 내동댕이친 프리즈 서울은 다시 내년을 기약하게 됐다. 그리고 우리는 한국의 다양한 작가들이 세계적으로 조명받을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를 기대할 수 있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