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21. 21:38ㆍ문화
▲ 영화 <어떤 영웅> ⓒ 영화사 진진
※ 영화 <어떤 영웅>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 장인 '바람'(모센 타나벤데)에게 진 빚을 갚지 못해 감옥에 간 '라힘'(아미르 자디디)은, 귀휴 기간 중 우연히 습득한 가방 속 금화를 팔아 보석금을 내려다 주인에게 돌려준다. 일약 '라힘'은 매스컴과 대중의 관심을 받은 영웅이 되고, '메르푸얀 자선 재단'의 대표 '라드메르'(페레슈테 사드로라파이)는 '라힘'에게 지원까지 약속한다. 하지만 이는 예상치 못한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알고 보니 결혼을 약속한 '라힘'의 여자친구 '파르크혼데'(사하르 골두스트)가 가방을 줍고 '라힘'에게 건넸던 것. 의회의 인사부장 '나딜리'(에산 구다르지)는 SNS에 떠도는 소문을 듣고 '라힘'을 의심하며 증거를 요구한다.
지난 3월 15일 개봉한 <어떤 영웅>은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2011년)와 <세일즈맨>(2016년)으로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만 두 차례 받은 이란의 거장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신작이다. 2021년 제74회 칸영화제 시상식 당시, 감독은 다음과 같은 심사위원 대상 수상 소감을 남겼다. "36년 전이 떠오른다. 나는 13살이었고 내가 가진 것으로 첫 번째 단편 영화를 만들었다. 그 후로 어려움과 압박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쓰고 만들어 왔다. 나는 계속해서 사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직시하려는 희망을 품고 있다"라는 소감을 증명하듯, 감독은 <어떤 영웅>을 통해 다시금 현실에서 포착한 윤리적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관객들과 나눴다.
물론, 국내 관객에게 이 질문이 온전히 도달한 것은 2년이 흐른 후의 일이었다. 2021년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이후,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이 '표절 의혹'으로 소송을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 사건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014년, 아자데 마시자데 감독은 테헤란 '카나메 아트 앤 컬쳐'에서 열린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워크숍에 참석했고, 자신이 촬영한 푸티지를 강사인 파라디 감독과 수업에 참여한 다른 학생들에게 보여준다. 2018년 마시자데 감독은 해당 푸티지를 편집한 다큐멘터리 영화 <올 위너스, 올 루저스>를 발표했고, 2021년 파라디 감독의 <어떤 영웅>이 본인의 다큐멘터리와 배경이 동일하다는 내용을 듣게 된다.
파라디 감독이 자기 작품에서 아이디어(재소자가 귀휴 기간 중 현금 가방을 주워 돌려줬다는 아이디어)를 도용한 것인지 의혹을 제기한 가운데, 파라디 감독은 가짜 뉴스를 유포하여 자신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마시자데를 고소한다. 마시자데 감독 역시 아이디어 도용, 무명의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과 거장 남성 감독이라는 '권위'를 이용한 부적절한 강압 행위(이 사유는 추후에 기각됐다고)를 사유로 맞고소를 진행한다. 2022년, 이란 법정은 파라디의 고소는 기각하고, 마시자데의 역고소는 일부 상황을 참작할 부분이 있어 재판부를 변경하여 시비를 가리는 것으로 결정했고, 해당 건은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이런 의혹을 알게 된다면, <어떤 영웅>은 관람 자체가 살짝 꺼림칙한 기분이 드는 작품이 될 수도 있겠다. 파라디 감독의 작품 세계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작은 균열이 생기고, 이내 그 균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며 모두를 혼란에 빠뜨리는 내용, 특히 특정 선택에서 벌어지는 '딜레마'가 주요 갈등이었기 때문. 앞서 언급한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세일즈맨>은 파라디 감독이 설계한 딜레마가 정점에 이르는 작품이었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에서는 이민에 대한 의견 차이로 '씨민'(레이라 하타미)과 '나데르'(페이만 모아디)가 별거를 하면서 문제가 시작되고, <세일즈맨>에서는 연극배우 부부가 붕괴 위기에 처한 집을 떠나 이사를 하면서 비극이 발생한 것.
<어떤 영웅>에서는 금화가 든 가방의 주인을 찾아준 '라힘'의 선행이 상황을 악화시키며 딜레마가 발생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사건 속에서 그 누구도 책임을 벗어날 수 없지만, 누구에게도 온전한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윤리적 난제가 계속된다. 명백한 가해자와 피해자 또는 절대 '악'과 절대 '선'이 존재하기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욕망과 양심, 이해관계가 충돌하며 발생하는 갈등과 파국을 그린 영화에 가까운 것. '라힘'을 연기한 배우, 아미르 자디디도 "우리 주변에는 '라힘'과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라면서, "그들은 매우 단순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권리를 되찾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되어야 했다"라고 밝혔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올바른 가치 판단을 하지 못하는 평범한 인물의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한 것. 또한, <어떤 영웅>은 '라힘'의 추락뿐만 아니라 '라힘'을 이용해 이미지를 쇄신하려는 교도소장과 직원, '라힘'을 취재해 시청률을 확보하려는 미디어, '라힘'을 초대해 대형 모금 행사를 여는 자선 재단 등 집단의 양면성과 이해관계가 다방면으로 충돌하며 파국을 빚는 광경을 보여준다. 이처럼 '라힘'과 주변 인물들 모두가 잘못과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딜레마를 통해 관객들은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된다.
앞서 두 영화의 결론은 어땠을까?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는 향후 양육자에 대한 선택을 앞둔 딸의 결정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씨민'과 '나데르'의 모습으로 끝났다. <세일즈맨>에서는 범인의 죽음 이후 침통한 표정으로 연극을 준비하는 부부의 모습으로 막을 내렸다. 반면, <어떤 영웅> 속 '라힘'은 대중의 영웅 위치에서 추락했지만, 아버지로서 더 이상 해서는 안 되는 또 다른 양심의 선택을 하며 한 아이의 영웅으로, 그리고 아버지로 남는 결말을 맞이한다. 그리고 다시 교도소로 향하는 '라힘'의 곁에 아들 '시아바시'와 여자친구 '파르크혼데'가 따뜻한 배웅을 보낸다. 전작과는 사뭇 다른 엔딩 속에서 관객들은 감독이 남겨 둔 한 줄기 희망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어떤 영웅>은 엄격한 종교적 규범 아래, 명예를 중시하는 이란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영화다. 대사 중에서 '명예'라는 단어가 열 번이나 등장할 정도로 어떤 가치보다 명예를 중요시하며, 한 사람의 잘못으로 가족의 명예가 더럽혀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또한 명예를 지키기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의 이름을 걸고 맹세를 하는 경우도 많다. 이 밖에도 <어떤 영웅>에는 장면 곳곳마다 이란 사회를 바라보는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예리한 시선과 문제 제기가 담겼다. 보석금을 내면 사형을 면할 수 있는 사법 체계, 수감자가 자살했음에도 이를 은폐하는 교도소, 많은 절차와 증거를 요구하는 행정 시스템 등 이란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와 병폐를 직시한다.
by. 알지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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