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MBTI 부작용
2022. 9. 17. 07:33ㆍ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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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가 뭐야?”라는 질문만큼 상대방의 성격을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는 질문은 드물다. 그리고 그만큼 부작용도 크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는 ‘아이스 브레이킹’의 수단이 되는 MBTI 질문. 특히 첫 만남에서는 당연하다는 듯 서로의 MBTI에 대한 질문을 주고받는다. 상대의 특정 행동을 MBTI의 이런 성향 때문이라며 판단하고, MBTI의 우수성에 감탄한다.
MBTI는 외향과 내향, 감각·직관, 사고·감정, 판단· 인식 등 지표에 따라 성격을 16개 유형으로 분류하고 이를 영어 알파벳 4개의 조합으로 표현하는 성격 검사다. 단순한 성격 검사지만 소개팅이나 면접에서도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최근 소개팅을 한 지인은 MBTI 때문에 소개팅을 망쳤다고 털어놨다. 본인이 INFP라고 밝히자 상대방이 “공감 능력이 부족하신가 봐요”라며 자신의 성격을 단정 짓듯 말했기 때문이다. 지인은 고작 16개의 알파벳 조합에 불과한 MBTI만 말했을 뿐인데 마치 자신을 다 안다는 듯 평가하는 태도에 기분이 상해 더 이상 만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고 했다.
물론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MBTI 테스트를 통해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기회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로 눈치를 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상대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으니 편리한 점도 분명 있다. 여기에는 ‘재미’로 시작해 ‘재미’로 끝나는 이해의 수단이라는 가정이 붙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MBTI 부작용을 호소하는 이들은 MBTI에 유난스럽게 집착하는 친구에게 지쳤거나 소개팅에서 특별한 대화도 나누지 않았는데 MBTI 궁합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을 당한 사례처럼 ‘과몰입러’들에게 치인 사람들도 많다. 입사 면접에서 MBTI만으로 평가를 당하거나 면접은 고사하고 이력서에 MBTI를 필수로 적어내야 하는 회사도 종종 등장한다. 얼마 전에는 ‘INFP·INTP·INTJ 지원 불가’라고 적힌 아르바이트 공고문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인성과는 다른 성격도 스펙이 되는 세상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회사에서 선호하는 혹은 선호하지 않는 MBTI에 대한 유언비어가 떠돌기도 한다. 실제로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에는 이력서의 MBTI를 보고 특정 유형을 떨어뜨려 피해를 봤다는 사연이 도착하기도 했다. MBTI가 INFP 인 김숙은 회사에서 INFP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연에 함께 분노했다. 그나마 희망적인 사실은 지난 7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청년 채용 이슈 조사’ 결과다. 조사 대상 752개 기업(매출액 기준 500대 기업 중 252개와 중견 기업 500개) 중 채용 과정에 서 MBTI 관련 질문을 한 기업은 23개(3.1%)에 불과할 정도로 비율이 높지 않다. 23개사 중 MBTI 결과가 당락에 영향이 없다고 답한 기업은 6개. 하지만 면접과 같은 누군가의 인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자리에서 MBTI 질문을 했다는 것 자체에 불편한 시선을 드러내는 사람도 많다. 취업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신뢰할 수 없는 검사 결과를 면접 과정에서 활용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시선이 대부분이며, 당락에 지장을 주지 않아도 면접의 흐름은 바뀐다고 말한다. 슬프게도 자신의 MBTI를 기업에서 좋아하는 유형으로 바꾸는 사람도 있다. 대기업을 목표로 취업을 준비 중인 20대 여성 C는 실제 자신의 MBTI는 ENFP(재기발랄한 활동가)지만 회사에서 대체로 ISTP(만능재주꾼)를 선호한다는 말을 듣고, 해당 유형에 대한 설명을 참고해 자소서를 작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MBTI에 열광하는 것을 넘어서 맹신하게 된 걸까. 첫 번째, 이들은 A형은 소심하고, AB형은 천재 아니면 바보라고 주장하는 혈액형에 비해 MBTI가 훨씬 과학적이라 믿고 있다. 별자리, 혈액형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지만 MBTI는 많은 문항을 내가 직접 답해 얻은 결과이다 보니 훨씬 더 섬세한 결과라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단지 공감대 형성을 위해 재미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좋지만 알파벳 유형으로 그 사람을 예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MBTI와 연관 지어 생각하게 되고, 결국 나와 상대방을 알파벳 조합의 틀에 가두게 된다. 타인의 속마음을 아는 것에 시간을 쓰고 싶지 않은 MZ세대의 성향과도 MBTI는 딱 맞아떨어진다.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은 불안함을 가중시키고, 심지어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MZ세대는 대인관계를 조금 더 안전하고 쉽게 맺기 위해 그리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MBTI식 관계에 열광하는 건지도 모른다.
MBTI 검사에는 치명적인 허점이 있다. 바로 내가 나를 평가한다는 것. 피검사자가 자신의 성향을 직접 평가하는 자기보고식 검사라는 점이다. 오직 기댈 것은 피검사자의 솔직함인데 ‘내가 되고 싶은 나’와 ‘진짜 나’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고, MBTI로 사람을 평가하는 현상이 만연해질수록 원하는 성격 유형을 정해놓고 그 답을 향해 문제를 풀 듯 검사를 하는 사람도 생긴다. 전문적인 심리검사와 달리 문항 속에 피검사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자신을 숨기고 있는지 평가하는 거짓말 척도와 방어 척도 항목도 존재하지 않는다. MBTI가 실제 자신의 성격이 아닌 남에게 보여지고 싶은 성격이라는 오명에 시달리는 것도 같은 이유다. MBTI 자체는 틀린 검사도, 나쁜 검사도 아니다. 재미로 활용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소재다. 문제는 과몰입이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MBTI라고 할지라도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불확실성과 모호함에 맞닥뜨려본다면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 혹은 더 솔직한 내 자신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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