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cient Future in Jeon Ju '전주에서 만나는 오래된 미래'

2022. 8. 21. 01:12국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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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의 시간 여행,
색장정미소와 삼양다방

전주역에서 차로 10여 분, 요즘 보기 어려운 빨간 양철 지붕에 마치 애니메이션에나 나올 법한 성처럼 큰 지붕 위로 작은 지붕들이 엇갈린 모습의 색장정미소가 나타났다. 이름은 여전히 정미소지만, 그 속은 골동품 전시장 겸 카페로 바뀐 곳이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양철 지붕 한 장을 얻어 그 위에 한국화를 그리고 싶다는 아내의 말에 이곳 정미소를 찾았던 이의만 대표는 하다 보니 양철 지붕 조각이 아닌 정미소를 사고, 3년간 품을 들여 고치고, 열심히 고친 것이 아까워 귀한 골동품을 전시하고, 골동품도 구경하고 차도 한 잔 마시면 좋겠다는 손님들의 이야기에 카페까지 하게 되었노라 이야기했다. 정미소를 고치는 데 3년이나 걸린 까닭은 바로 “안 고친 것처럼 고친다”는 이의만 대표의 리모델링 제1원칙 때문이었다. 반세기에 걸쳐 한자리를 지켜온 오래된 정미소의 아름다움을 지키고자 한 이의만 대표는 문화재 복원 기술자들을 섭외해 정미소의 골조를 일일이 뜯어 살피고 옛 사진 등을 참고하며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살려냈다. 이미 수리를 마친 부분도 추후 발견된 사진에서 그 모습이 다르면 다시 작업할 정도로 신경 썼다. 이제는 쓰지 않는 1960년대의 대표적인 건축 재료였던 양철 지붕이나 골조가 되는 나무 기둥 등은 전라도 지역 곳곳에 철거되는 옛 건축물이 있는지 수소문하여 이를 기다렸다가 교체했다. 색장정미소의 상징과도 같은 빨간 양철 지붕은 그렇게 하여 남원에서 130장, 무주에서 60장, 진안에서 65장을 실어온 끝에 완성한 것이라고 했다. 다만 정미소 시절에는 송풍기를 놓고 사다리로 오르락내리락하던 층고가 가장 높은 공간은 사람들이 올라갈 수 있도록 계단을 놓아 2층, 3층으로 만들었다.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문을 연 지도 어느덧 2년, 색장정미소는 그사이 할아버지는 옛 추억을 그리고 청년은 뉴트로(New+Retro)를 즐기며 아이는 역사를 배우는, 3대가 한자리에 모여 어울릴 수 있는 둘도 없는 공간으로 새로운 시간의 흔적을 쌓아가고 있었다.

한편, 한옥마을이 있는 전주 구도심에 1952년 문을 연 삼양다방은 “1950~60년대에는 피난 온 영화감독, 배우, 문인 등을 비롯한 예술인과 클래식 음악 감상회 ‘싸롱 세라노’ 등 음악 애호가들의 장소로, 1970년대에는 모던한 서양식 공간으로 시민의 일등 데이트 코스였다”. 2013년 상가의 리모델링과 함께 사라질 뻔한 위기에 놓였지만 60여 년 동안 한자리를 지킨 끈기는 삼양다방을 추억하는 문화 예술인과 뜻을 보태려는 이들을 불러 모았고, 다행히 ‘국내 최고령 다방’이라는 가치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다방이 있는 상가 건물 자체가 4년이 넘어 리모델링은 피하지 못했지만, 2014년 다시 문을 연 삼양다방은 이제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현대식 카페와 옛 다방을 오가는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 소파와 테이블부터 각종 집기까지 그대로 보존한 옛 다방의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어느새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잊고 계란 동동 쌍화차, 모닝커피 혹은 옛날 커피를 주문하고픈 충동에 사로잡힌 나를 발견할 것이다.

전주의 어제와 오늘을 잇는 오래된 공간들

현재 경기전길에 위치한 교동미술관과 인접한 곳의 교동미술관 2관은 바로 옛 백양메리야스의 봉제 공장과 편직 공장이 있던 곳. 내의 시장의 80%를 차지해 국민 내의로 불렸던 백양메리야스의 공장은 근로자 수가 약 500명에 달했고, 지역 주민과 더불어 살을 부대끼며 숱한 추억을 쌓았다. 교동미술관과 교동미술관 2관은 공장이었던 시절의 추억을 기억하고 공유하고자 그 원형의 일부를 살려 리모델링했고, 그리하여 봉제 공장은 2007년 다양한 예술을 소개하는 전시관으로, 편직 공장은 2010년 전시관과 작가를 위한 레지던시 공간으로 새롭게 개관했다. 특히 교동미술관 2관에는 1970년대 편직 공장에서 일어난 화재의 흔적까지 고스란히 남아 그 시간을 가늠케 한다. ‘소통의 통로’라는 뜻을 담아 내건 ‘교동(橋動)’의 이름처럼 교동미술관은 현재 국내 작가의 전시는 물론 다양한 문화 행사와 자체 제작한 한지 공예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래도 전주에 왔으니, 비빔밥은 먹어야 했다. 한옥마을로 가는 길 초입에 자리한 한국집은 우리나라 최초의 전주비빔밥 식당으로, 1952년 처음 문을 열 당시에는 다른 곳에 있었으나 1970년대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와 지금까지 3대에 걸쳐 운영하고 있다. 밥에 올린 다채로운 고명과 70여 년간 한결같은 맛의 비밀이 담긴 고추장 양념, 정갈한 찬들이 넘치지도 덜하지도 않아 점잖은 전주비빔밥의 원형이라 할 만하다. 2011년 국내에서 유일하게 <미쉐린 가이드> 한국편에 소개되었다는 은근한 자부심, 이곳저곳을 고쳐가면서도 새로 건물을 올리기보다는 한옥의 형태를 유지한 오랜 멋이 어쩌면 한국집 비빔밥의 맛을 더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발견한 익숙하고도 새로운 전주는 전북대학교 안에 있는 자연사박물관이었다. 1947년 도립이리농과대학으로 개교해 1951년 국립전북대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고 1957년 중앙도서관으로 지은 석조 건축물인 자연사박물관은 귀한 근대 문화 유산이다.

한옥마을과 전동성당을 보고 비빔밥과 콩나물국밥을 먹으려는 여행객들로 북적이는 전주의 한편에는 오래된 곳에 터를 잡고 세월을 지나온 이들이 있었다. 오래된 건축물들이 들려주는 전주의 어제와 오늘이 한옥마을, 그 너머에 있는 전주의 미래를 더욱 기대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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