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 21. 01:30ㆍ국내여행
안도 다다오, 그리고 새로운 제주
제주는 한 번 간 것으로 그곳을 여행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계절에 따라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제주의 자연 때문이고,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또 하나의 제주를 지은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을 찾아가는 이유
안도 다다오의 건축은 노출 콘크리트와 자연, 그리고 다소 복잡한 동선의 3가지 키워드로 점철된다. 안도의 건축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노출 콘크리트는 마감재 없이 콘크리트의 물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공법이다. 지진과 화재에 강하고 내구성도 좋지만, 진회색에 가까운 외관을 첫눈에 아름답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는 “어떤 형태든 자유자재로, 더구나 단번에 만들 수 있다는 것”, “내가 만들고 싶은 공간을 원초적 형태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큰 매력을 느끼고, 데뷔작인 콘크리트 박스형 주택 ‘스미요시 나가야’(1975~1976)를 시작으로 거의 모든 건축 작품에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해 자신만의 시그너처로 삼는다. 여기에 그는 빛과 물, 바람 등 자연을 건축물 안으로 들여옴으로써 자연과 대화하는 공간을 창조한다. 그의 대표작인 ‘빛의 교회’(1987~1989)는 노출 콘크리트로 이뤄진 예배당 정면에 십자가 형태의 한 줄기 빛이 들어온다. 해의 움직임에 따라 변화하는 빛의 십자가는 그저 그곳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경건한 마음이 들 정도여서, 과연 ‘자연을 품은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정수가 되는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외형보다 내부에서 체험이 더 중요하다”고 여긴 그는 노출 콘크리트와 자연으로 빚은 건축에 다양한 동선을 배치해 공간에 대한 건축적 체험을 확대한다. 주로 담장이나 중정을 이용해 사람들의 이동과 시선을 컨트롤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동선 대부분은 입구에 한번 들어서면 출구가 나올 때까지 필연적으로 따라 갈 수밖에 없게끔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안도의 안내에 몸을 맡기고 걸어가다 보면, 우리는 하나의 공간을 위와 아래, 왼쪽과 오른쪽 다각도로 바라보게 될 뿐 아니라 빛과 계절의 변화까지 느낄 수 있다.
1969년 안도다다오건축연구소를 연 이래 안도는 줄곧 ‘도시에 저항하는 게릴라’ 정신과 ‘기능이 아닌 건축의 가능성에 시선을 고정하고’ 자신의 이름을 건 건축물을 설계해왔다. 물론 조국인 일본에 가장 많은 건축물을 지었으나, 이탈리아, 중국, 미국 등 그의 건축 정신과 가치에 공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날아갔다. 그리고 2008년과 2012년, 그는 자신의 건축물에 천혜의 자연을 자랑하는 제주를 담고자 한국의 남쪽 섬을 찾았다.
안도 다다오가 담은 제주의 바다, 유민미술관과 글라스하우스
양쪽으로 길게 벽을 이룬 미술관 정문의 노출 콘크리트에는 ‘샤이닝 글라스’가 설치되어 있다. 다른 길이와 각도의 색유리는 햇빛으로부터 시시각각 제주의 풍경을 반사해 그림자로 만든다. 백록담을 형상화한 작은 연못을 지나면 낮은 담장 너머로 우뚝 솟은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보이고, 곧이어 이곳이 제주임을 알려주는 현무암의 검은 돌들이 드넓게 펼쳐진다. 바로 ‘돌의 정원’이다. 마치 홍해를 가르듯 나타난 ‘벽천폭포’는 양옆으로 세워진 벽을 따라 물이 흘러내리고 증폭된 폭포 소리가 통로를 가득 채운다. 마침내 당도한 건너편, 뷰파인더에는 일찍이 입구에서 보던 성산일출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반가운 인사를 건네고 다시 한번 높은 돌담으로 둘러싸인 ‘하늘길’로 향한다. 어느새 주변의 소리는 잦아들고, 고요하고 푸른 하늘만 남는다. 비로소 우리는 유민미술관 전시실로 들어선다.
안도 다다오는 “건축이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보호하는 구조적 기능을 넘어 자연과의 교감, 비일상적 공간의 체험과 같은 미학적 기능을 구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간과 해안으로 이뤄진 제주의 원생적 자연을 본떠서 설계한 유민미술관은 그의 말처럼 관람자로 하여금 제주의 자연과 교감하고, 제주의 공간을 체험하게 한다. 섭지코지의 물과 바람, 빛과 소리를 담은 야외 공간은 그저 이곳을 지나는 것만으로도 작은 제주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한편, 섭지코지에 나란히 자리한 글라스하우스는 그의 시그너처인 노출 콘크리트가 1층에서 중심을 이루고, 제주의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파노라마 같은 통유리가 2층 공간 전체를 둘러싸는 형태다. 온종일 푸른빛과 하얀빛, 붉은빛으로 2층을 물들이는 햇살은 제주가 왜 ‘환상의 섬’으로 불리는지 절로 알게 한다.
안도 다다오가 담은 제주의 산, 본태박물관
2012년에 지은 본태박물관은 중산간 지역에 자리해 앞선 유민미술관, 글라스하우스와는 또 다른 제주를 만날 수 있다. ‘본태(本態)’, 본래의 형태라는 이름의 뜻처럼 우리나라 본연의 아름다움을 탐구하고자 설립된 이곳은 한쪽에서는 현대미술의 거장인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구사마 야요이, 백남준 등의 작품을, 다른 한쪽에서는 소반과 보자기, 목가구 등 소박하면서도 화려한 아름다움을 지닌 한국 전통 공예품을 전시한다. 안도 다다오는 “현대미술과 전통적인 것의 조화를 이루는 일은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번에도 안도 다다오식 건축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제2관의 2층에 자리한 실내 다리를 건너기 전, 노출 콘크리트의 프레임을 액자 삼아 저 너머로 보이는 산방산은 안도 다다오가 자연으로 만든 또 하나의 작품이다. 제2관에서 제1관으로 향하는 길은 본태박물관의 상징적 공간이다. 잔잔히 흐르는 수경폭포와 낮은 기와 담장, 그 위로 세워진 ㄱ자 모양의 거대한 콘크리트 벽은 C.S. 루이스의 소설 <나니아 연대기> 속 ‘나니아’로 가는 문처럼 이곳을 통과하면 우리는 현대미술의 세계를 건너 전통 공예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제주를 제대로 여행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건축물 밖으로 나가 자연과 만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제주의 햇살과 바람과 바다를 더 가까이, 그리고 찬찬히 느끼고 싶다면 안도가 지은 세계로 들어가 가능한 한 오래 머물기를 권한다. “건축의 목적은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하는 것이다”라는 자신의 말을 그야말로 건축으로 실천해온 안도 다다오가 우리를 제주의 깊숙한 풍경 속으로 이끌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지금, 제주로 가야 하는 마땅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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