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1. 12:48ㆍ문화
▲ 영화 <타르> ⓒ 유니버설 픽쳐스
'리디아 타르'(케이트 블란쳇)는 베를린 필하모닉 최초의 여성 수석 지휘자로, 전 세계에 몇 안 되는 EGOT 수상자(에미상, 그래미상, 아카데미상, 토니상)이기도 하다. 여성 지휘자를 일컫는 단어 '마에스트라'가 아닌, '마에스트로'로 불리면서 커리어의 정점에 오른 '타르'는 '말러 교향곡 5번' 녹음 음반 발매와 자서전 '멈추지 않는 타르'의 발간을 앞두고 있었다. 어느 날, '타르'에게 자신이 설립한 '아코디언 재단'(여성 지휘자들의 창작 역량과 공연 기회 향상을 위해 만들어진 재단)의 회원이었던 '크리스타'(실비아 플로테)로부터 이상한 이메일이 도착한다.
'타르'는 조수 '프란체스카'(노에미 메를랑)에게 이메일을 지우라고 지시하지만, 그후 '크리스타'의 자살 소식을 접한다. '타르'가 불안에 사로잡힐 무렵, 오케스트라에는 '올가'(소피 카우어)라는 젊은 첼리스트가 들어온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콘서트마스터이자, '타르'의 아내인 '샤론'(니나 호스)은 '올가'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기류에서 불편함을 느낀다. <타르>는 배우 출신으로, 장편 데뷔작 <침실에서>(2001년)로 아카데미 5개 부문 후보에 지명된 토드 필드 감독이, <리틀 칠드런>(2007년) 이후 오랜만에 연출 복귀를 알린 작품이다. 또한, 아카데미 작품상, 여우주연상, 감독상, 각본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지명되기도 했다.
토드 필드 감독은 오랜 시간 동안 어린 시절의 목표를 위해 매진하고, 그 목표를 이뤄낸 후 꿈이 악몽으로 변하는 캐릭터를 생각했다면서, 무대 위와 아래에 모두 존재하는 권력 구조를 보여주고자 했다. 그는 지휘자이자 음악 감독인 존 모세리의 도움, 독일 오케스트라 단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클래식 음악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권력 형태를 조사해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케이트 블란쳇이 토드 필드 감독과 함께 작업에 참여한 것은 2020년 9월인데, '위대한 사람을 동경하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과 그들의 추락을 목격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동일한 마음인가' 같은 질문을 통해 '리디아 타르'의 세계관을 구축해나갔다.
다행히 케이트 블란쳇은 10년 가까이 시드니 연극 회사에서 남편 앤드류 업튼과 함께 공동 예술 감독과 공동 CEO를 맡은 경험이 작품에 도움이 됐다고. 조직 내의 정치적인 부분과 인적 자원 관리, 정부 지원 등 예술가의 위치에서 투입되는 기관 운영을 위한 긴 시간이 '리디아 타르'의 속사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 것. 물론, 지휘자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는데, 케이트 블란쳇은 지휘 코치인 나탈리 머레이 빌과 끊임없는 훈련을 거듭했다. "지휘는 언어이자, 거대한 창조적 커뮤니케이션 행위"라는 것을 깨달은 케이트 블란쳇은 정확히 '타르'에 몰입했다. 독일어, 피아노 연주도 지속해서 공부해야 했다고.
이런 공을 인정받은 케이트 블란쳇은 지난해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시작으로, 골든글로브, 영국 아카데미 등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양자경과 함께 가장 강력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후보로 지목되고 있다. 지금까지 후보만 8번 지명된 케이트 블란쳇이 만약 이번 시상식에서 수상을 하게 된다면, <에비에이터>(2004년), <블루 재스민>(2013년)에 이어 통산 3번째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200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한 번씩의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는 대기록도 세우게 된다.
'타르'는 목적을 잊은 채 자신만의 레거시를 구축하는 데 몰두하면서, 음악과의 연결고리를 망가뜨린 인물로, 스스로가 완벽하다면 누구도 자신을 해칠 수 없다는 생각에 무의식적으로 동의하면서, 예술이 가진 불완전성과 그 속에 존재하는 회색 영역을 간과해버린 인물이었다. 우리가 흔히 '타르'하면 생각하는 '점성의 검은색 액체' 혹은 담배 연기에 포함된 '유해 물질'처럼, '리디아 타르'는 그렇게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걸어 나가게 된다.(물론, TAR의 애너그램으로, 예술을 상징하는 ART가 만들어질 수 있다)
한편, <타르>는 몇몇 특이점을 보여줬는데, 대표적으로 영화의 끝이 아닌 오프닝에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 토드 필드 감독은 그런 오프닝이 '전주'처럼 보이길 바랐다고 한다. 무수한 콘텐츠를 집에서 접하는 시기, 많은 이들이 크레딧이 오르기 전에 자동으로 다음 작품, 혹은 화면을 꺼버리는 상황에서 관객들의 기대를 재조정하고 싶었다고. 그것이 <타르>의 주제에 접근하는 쉬운 방식 중 하나라고 토드 필드 감독은 소개했다. 그러면서도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는 영화 속의 연주자들과 그들을 이끈 힐두르 구드나도티르 음악 감독, 존 모세리 음악 고문, 나탈리 머레이 빌 지휘 코치를 배치해, 그들의 박수를 유도했다.
여기에 초반 '리디아 타르'가 줄리아드 음대에서 강연하는 장면은 10분 넘게 롱테이크로 진행된다. 대본 분량상으로도 10페이지가 넘은 이 장면은 '리디아 타르'의 얼굴을 근접하게 담아내거나, 움직임에 따라 가까이 팔로우하거나, 피아노 연주의 투 샷을 담아내는데, 크레인, 스테디캠, 와이어 없이 36번의 카메라 움직임으로 씬을 완성했다. 케이트 블란쳇과 제작진은 촬영에 앞서 하루를 '테크니컬 리허설'로 소요했는데, 10여 번의 테이크로 촬영을 마무리했다고. 이 롱테이크는 음악과 가르침에 대한 열정,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짜증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후반부 복선과도 이어지는 명장면이 됐다.
by. 알지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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