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컨버세이션 : 120분 내내 대화만 나오는 영화, 뭐길래?

2023. 2. 27. 19:58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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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컨버세이션> ⓒ 필름다빈

지난 2021년에 열린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제74회 서울독립영화제 등을 통해 관객들을 만났던 <컨버세이션>은 농담의 가면을 쓴 진실과 뼈 있는 거짓말, 현재의 단상과 과거의 추억을 곱씹는 솔직 담백한 대화 앙상블을 보여준 영화다. 120분의 상영 시간 동안, <컨버세이션>은 16개의 롱테이크 시퀀스로 이어진 퍼즐 같은 구성으로 이뤄졌다. 그래서 <컨버세이션>은 각 시퀀스에 나오는 인물들의 평범한 일상의 대사를 따라가며, 이 대사에서 무엇을 관찰할 수 있는가에 대한 감독의 마음을 느껴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첫 번째 시퀀스는 20대 후반, 파리에서 함께 유학했던 '은영'(조은지), '명숙'(김소이), '다혜'(송은지)가 만나 자신들의 추억을 공유하면서, 현재를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온다. 약 10년이 지난 터라, 세 사람은 서로의 삶을 토로하기에 바쁘다. 이어지는 작품의 주요 축은 '승진'(박종환)과 '필재'(곽민규)가 아파트 인근 공원에서 유모차를 끌면서 이어지는 대화로, 둘 사이의 대화는 마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고도'를 기다리는 인물들처럼 겉돌기를 반복한다. 그다음 축에는 '은영'과 '승진'이 만나 '데이트'인지, 아닌지 모를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어진다'라는 말을 계속 사용했는데, 이 이어짐 사이에는 영화의 순서와는 맞지 않을 수도 있는 불친절한 대목도 등장한다. '은영'이 택시에서 핸드폰을 바깥으로 떨어뜨리면서 '택시기사'(정재윤)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대표 사례. 정치 이야기나, 동물권 관련 이야기와 같은 사회 이야기도 하지만, 그것이 작품의 주제는 아니고 소재로 사용되는 정도로 진행되기도 한다. <컨버세이션>을 보면서 떠올린 구조는 홍상수 감독의 <자유의 언덕>(2014년)이었는데, 이 작품은 최소한 '소소한 사건'을 두고 펼쳐지는 비선형적 구조의 전개이다 보니 (의외로)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하지만 <컨버세이션>은 '사건의 전개'보다는 왜 그런 대화를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궁금함으로 무장한다. "'대화'가 이뤄지기 때문에, 인간 사이의 '관계'도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라는 김덕중 감독의 실험 정신을 보는듯했다. 심지어 배우들의 대사는 '애드리브'가 아닌, 실제 대화 같은 연기 호흡으로 구성됐다. 최근 공개된 촬영 비하인드 영상에서 곽민규는 "우리 첫 촬영 때 기억나?"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19 테이크 갔대. 20 테이크 갔으면 어떻게 했을 거야?"라고 묻자, 박종환은 "요즘 세상에 이렇게 찍을 수도 있구나"라며 한 신을 여러 번 반복한 기억을 솔직한 소감을 밝혔다.



앞서 언급한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이 남긴 멘트를 보면, <컨버세이션>이 어떤 의도로 만들어졌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정한석 프로그래머는 "선형적 내러티브로 삶의 중대함을 설득하는 대신, 일상의 소중한 조각들을 비선형적으로 모아 배치하여 삶에 관한 관객의 상상적 내러티브가 작동하기를 촉구하고 있다"라면서, "그 정서적 울림과 파장이 대단하다"라고 언급했다. 서울독립영화제 정지혜 프로그래머도 "신과 시퀀스 사이에는 긍정할 만한 긴장감이 팽팽하고, 카메라 위치와 움직임, 그리고 프레임 안팎을 활용하는 연출의 전략이 빛난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기에 2월 23일 개봉한 <컨버세이션>은 제목 그대로 '대화' 자체가 주는 묘한 분위기와 생동감이 매력인 작품으로, 현재 독립영화가 시도할 수 있는 또 다른 성취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이 됐다. 말맛이 생명이기에, 현재 독립영화계에서 내로라하는 '믿고 보는 배우' 조은지, 박종환, 곽민규, 김소이, 송은지, 곽진무의 활약이 인상적인 작품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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