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답게 살기 위한 주거 환경은 무엇일까?

2022. 10. 5. 19:14생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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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되기 위해 갖춰야 하는 최소한의 요건은 무엇일까요. 쾌적하고 안전한 생활을 위한 최저선. 우리나라는 이런 최소한의 요건을 ‘최저주거기준’이라는 법률안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가구 구성별 최소 주거면적과 용도별 방의 개수, 필수적인 설비 기준, 구조·성능 및 환경기준 등을 규정하고 있죠.

가구구성별 최소 주거면적과 용도별 방 개수, <최저주거기준> 중 일부
  • 1인가구: 1개의 침실과 부엌, 최소 14㎡(4.2평)
  • 2인가구: 1개의 침실과 식사실 겸 부엌, 최소 26㎡(7.8평)
  • 3인가구: 2개의 침실과 식사실 겸 부엌, 최소 36㎡(10.8평)
  • 4인가구: 3개의 침실과 식사실 겸 부엌, 최소 43㎡(13평)
  • 5인가구: 3개의 침실과 식사실 겸 부엌, 최소 46㎡(13.9평)
  • 6인가구: 4개의 침실과 식사실 겸 부엌, 최소 55㎡(16.3평)

*최저주거기준에는 가구원 수에 따른 표준 가구구성 및 침실분리원칙도 제시하고 있으나 간결하게 표현함

2020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의 비중은 2019년 5.3%에서 2020년 4.6%로 감소했다고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최저주거기준 미달 문제는 빠른 속도로 개선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큰 문제가 있습니다. 기준의 모호함 또는 애초에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최저주거기준’이 적용되지 않는 집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사람답게’ 살기 위한 주거 환경을 고민하기도 전에, 가장 기본적인 생명을 위협하는 집이 많습니다.

주택과 비주택의 경계
집이 생명을 위협하다

반지하를 비롯한 옥탑·고시원, 이른바 ‘지옥고’는 주택과 비주택의 경계에 있는 ‘비적정 주거’입니다. 반지하와 옥탑은 법적으로는 주택의 일부이지만 주거 환경으로 이용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저주거기준은 좁은 면적 기준으로 인해 가장 비판받곤 합니다. 그러나 면적보다 더 문제인 것은 모호한 구조·성능 및 환경기준입니다.

제4조(구조·성능 및 환경기준) 주택은 안전성·쾌적성 등을 확보하기 위하여 다음 각호의 기준을 모두 충족하여야 한다.

1. 영구건물로서 구조강도가 확보되고, 주요 구조부의 재질은 내열·내화·방열 및 방습에 양호한 재질이어야 한다.

2. 적절한 방음·환기·채광 및 난방설비를 갖추어야 한다.

3. 소음·진동·악취 및 대기오염 등 환경요소가 법정기준에 적합하여야 한다.

4. 해일·홍수·산사태 및 절벽의 붕괴 등 자연재해로 인한 위험이 현저한 지역에 위치하여서는 아니된다.

5. 안전한 전기시설과 화재 발생 시 안전하게 피난할 수 있는 구조와 설비를 갖추어야 한다.

제4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적절한’, ‘양호한’ 등의 표현으로는 비적정 주거의 습기와 채광, 단열, 해충 문제를 제대로 규제할 수 없습니다. 또 고시원은 주택이 아닌 거처로 분류되기 때문에 애초에 최저주거기준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최저주거기준은 ‘주택’에만 적용되는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주거기본법에는 건물을 신축할 때 최저주거기준에 미달되는 경우 보완 지시 조치를 하도록 하는 조항이 소형 주택에 대해서는 예외로 규정돼 있습니다. 부족한 기준마저 지키지 않아도 되는 상황인 것이죠. 지난 8월, 폭우로 인한 반지하 참사에 희생된 사람은 서비스 노동자와 발달장애인, 10대 아동청소년이었습니다. 품질 규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주택과 비주택의 경계에서, 가장 먼저 보호받아야 할 취약계층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집이라 하더라도 상황은 다르지 않습니다. 위반건축물은 불법으로 증·개축하거나 무단으로 용도를 변경해 주거용이 아닌 건물을 주택으로 공급하는 것을 말합니다. 임대인이 세금을 회피하고 수익을 최대로 만들기 위해 생긴 주택임대차시장의 무법지대입니다. 주로 청년들이 거주하는 대학가의 원룸촌을 ‘신(新) 쪽방촌’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아파트 거실을 7-8개로 쪼개고, 보일러실을 옆집과 공유하고, 에어컨이 가벽에 걸쳐져 있고, 현관문을 열면 도로와 마주하고, 현관문이 바싹 붙어 있어 동시에 문을 열 수 없는 비상식적인 집들이죠. 위반건축물은 물리적으로 열악할 뿐 아니라 전입신고, 보증보험 가입, 주거 정책 이용이 불가해 권리마저 위협하고 있습니다. 열악하다고 해서 주거비가 저렴한 것도 아닙니다. 청년들은 쪼갠 방에서 월세 4-50만원을 내고 삽니다. 그만한 월세도 이 도시에서는 감지덕지이기 때문입니다.

위반건축물은 청년 주거 밀집 지역에서 집단적으로 발견되지만 더 이상 서울의 문제로만 바라보기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민달팽이유니온*은 전국 청년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청년주거기초훈련교육에서 각종 위반건축물에 거주하는 청년 세입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고 있습니다. 2020년 주거실태조사는 1인당 주거면적이 19년 32.9㎡(9.9평)에서 ‘20년 33.9㎡(10.2평)로 증가했다고 발표했지만, 청년들은 여전히 임대인의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건강과 일상을 고려하지 않고 조악하게 쪼갠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청년을 새로운 주거취약계층으로 규정하며 청년 세입자 당사자 연대로서 활동을 시작한 청년주거단체

반지하를 모두 없애버리겠다고요?

열악한 주거환경의 문제는 곧 도시의 주거빈곤 문제입니다. 사람답게 살만한 요소가 부재한 공간 뒤에는 그런 공간으로도 버젓이 돈을 버는 것을 묵인해온 사회 구조가 존재합니다. 반지하 문제, 위반건축물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도시 내 유일한 저렴 주거지 선택지이기 때문입니다. 갈수록 높아지는 임차료를 감당하기 힘든 사람들은 반지하, 고시원, 쪽방 등 비적정 주거지로 내몰리죠. 그곳에서 신체와 정신 건강을 위협받고, 폭염과 홍수 등 자연재해에 그대로 노출됩니다.

그러나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공공의 대책은 실효성이 약합니다. 2018년, 서울 종로구의 국일고시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당하는 참사가 있었습니다. 당시 총 33명의 이재민에게 제공된 긴급주거지원 임대주택은 서울 외곽에 위치하고, 6개월의 거주 기간만을 담보했습니다. 결국 절반이 넘는 이재민들이 긴급주거지원을 포기하고 인근의 다른 고시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번 폭우 참사에서도 서울시의 실효성 없는 대책안이 시민사회의 분노를 샀습니다. 반지하 주택을 전면 금지하고, 기존 주택은 일몰제로 없애겠다고 했지만, 전국의 반지하 거주 인구는 약 60만 명. 그중 서울시 거주 인구만 35만 5천 명에 육박합니다. 게다가 폭우 참사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정부는 가장 핵심적인 주거복지 자원인 공공임대주택 2023년도 예산을 올해 대비 5조 7천억 원 삭감했습니다. 공공임대주택이 부재한 상태로 반지하 주택을 없앤다면, 이 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위반건축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민달팽이유니온은 2020년 ‘포용적 주거복지 제고를 위한 주거정책 연구’에 참여해 서울시 관악구 대학동의 1개 도로 156채 건물을 전수조사 한 적 있습니다. 그중 51.2%가 위반건축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위반건축물들을 전부 시정하려면 골목의 절반을 뜯어내야 하는데, 이곳에 살던 사람들의 일상과 주거권은 또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까요?

집답지 않은 집, 열악한 주거 환경의 문제는 1인당 거주 면적을 늘린다거나 열악한 주거 환경 자체를 없앤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사람의 건강과 목숨을 담보 삼아 임대인의 불로소득을 보장하는, 불량한 임대 사업의 고리를 끊어낼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직접 주거비 지원 상향, 최저주거기준 강행규정화, 장기공공임대주택 공급 등 골고루 갖춘 주거 복지 실현이 절실합니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집을 위해 필요한 것들

먼저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주거급여 등 직접 주거비 지원을 확대함으로써 주거 빈곤이 열악한 주거 환경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이때 가장 고려되어야 할 것은 주거급여의 상향이 임대료 상승으로 곧바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시스템입니다. 급여비 수준이 현실적으로 책정되지도 않은 데다가 주거 급여비가 올라갈 때마다 쪽방 임대료도 함께 오르는 현재의 실정으로는 온전한 주거 빈곤 해소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 현재의 최저주거기준보다 더욱 구체적인 주거 환경의 최저선을 정하고, 이를 행정적으로 실현할 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쾌적’의 이면에는, 사람이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온전히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해외의 주택품질규제제도를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최저주거기준은 가구 구성별 최소 주거면적과 용도별 방의 개수까지만 규정하고 있지만, 벨기에의 경우 최소 주거 면적뿐 아니라 높이까지 규정하는 등 건강친화성 요소를 고려하는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벨기에 브뤼셀에는 ‘지역주거조사부’를 따로 두어 조사부터, 법률, 행정, 회계, 사회 조직을 각기 갖추고 있죠. 미국은 주택바우처* 대상 가구의 임대주택에 HQS(Housing Quality Standard)라는 기준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위생시설, 취사 및 쓰레기처리, 공간과 안전, 냉난방 환경, 채광과 환기, 구조와 자재, 실내공기의 질, 물 공급, 납성분 페인트, 접근성, 입지와 지역사회, 위생상태, 화재경보기 등 13개 항목을 설정하고 각 항목마다 구체적인 성능 요건과 판정 기준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HQS를 평가하기 전, 임대인에게 사전 고지를 주고 평가에 대비하도록 지원합니다. 이에 충족하지 못할 경우 시정명령을 내리고, 임대인이 조치하지 않으면 임차인이 다른 주택으로 이주하도록 합니다.

*임대료의 일부를 쿠폰 형태의 교환권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정부가 저소득층의 전·월세 임대료를 일부 보조해 주는 주거복지제도

기준 상향보다 중요한 것은 적용입니다. 특히나 최저주거기준이 유명무실한 쪽방, 반지하, 고시원 등의 비적정 주거에 별도의 주거환경 최저선을 마련해야 합니다. 반지하를 없앤다고 말하기 이전에, 이러한 공간이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열악한 주거환경부터 단계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장기공공임대주택이 필수로 갖춰져야 합니다. 더불어 쪽방촌을 공공임대주택단지로 전환해 주거취약계층이 같은 지역에서 일상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민간임대차시장에서의 저품질 주택(혹은 비주택)의 버젓한 거래를 어떻게 막을 것인지에 대한 대책이 절실합니다.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주택 혹은 비주택의 거래에는 어떻게 페널티를 줄 것인지 고민해야 하고, 자격을 갖추지 않은 임대인은 임대 사업을 하지 못하도록, 최저주거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는 공간은 집으로 거래하지 못하도록 막는 행정의 결단도 필요합니다. 미국은 주거 적합성을 임대인의 의무로 규정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임차인이 임차료 지불을 거절하거나 계약 해지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쾌적한 공간에서 살 권리는 거꾸로 말해, 쾌적한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 의무가 존재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10월 첫 번째 월요일은 UN이 지정한 세계 주거의 날입니다. 나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공간은, 사람이 생활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자원입니다. 집이 있어야 쉼이 있고,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주거권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이러한 기초권이 감히 누군가의 소유의 욕망에 매몰되지 않도록 사회구조를 전환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사는 동네에 안전한 주거 환경을 갖추는 일은 주거취약계층뿐만 아니라 나의 주거권을 담보하기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주거의 최저선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돈을 더 많이 내야만 나의 생명을 위협하는 공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구조는 종국에는 누구의 주거 안전도 보장할 수 없게 될 테니까요. 사람이 사람답게 집에 살 수 있도록, 더 이상의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불량한 착취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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