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림팰리스 - 이렇게 무서운 아파트 스릴러는 처음 봤다

2023. 6. 6. 11:54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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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드림팰리스> ⓒ (주)인디스토리

그간 '한국형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수 많은 스릴러 영화들이 개봉했다. <소름>(2001년), <아파트>(2006년), <이웃사람>(2012년), <숨바꼭질>(2013년), <목격자>(2018년)와 같은 영화들은, '아파트 부동산 공화국'이라 불리는 한국에 사는 이들에게, 나를 보호해야 하는 집이 가장 위협적인 공간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담아내 화제가 됐다. 장르 자체가 공포인 영화와 달리, 지금 소개할 <드림팰리스>는 '괴담'이 아닌, 현실에 있을 법한 일들을 여러 형태로 엮어 내며, 스릴을 만들어내는 흥미진진한 영화였다.

'혜정'(김선영)은 대기업의 산업재해로 인해 남편을 잃었고, 사고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해 시위에 나서지만 사고의 과실이 남편에게 있을 수 있다는 유가족들의 불편한 시선을 받았다. 2년 여의 투쟁을 포기한 '혜정'은 결국 대기업과의 합의를 선택한다. 이는 '혜정'이 시위를 그만둔 이후에도 농성장에 방문해, 유가족들을 만나왔던 고3 수험생 아들 '동욱'(최민영)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선택이었다. 선택에 후회는 없었던 '혜정'은 합의금에 보태 신축 아파트 '드림팰리스'를 분양받아 입주하지만, 아파트는 '꿈의 궁전'과는 거리가 있었다. 부푼 희망을 안고 새 집 청소를 하던 '혜정'은 수도꼭지를 타고 터져 나오는 녹물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집의 분양을 담당한 직원 '용민'(김태훈)을 찾아가 사기 분양을 당한 것 같다고 이야기하지만, '용민'은 해결 방안을 제시하기는 커녕 적반하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혜정'은 아파트 입주민 회의에도 참여하지만, '녹물' 소식에 입주민들은 아파트 값이 떨어진다며 어디가서 이야기하지 말라고 주의를 내린다. 다시 '혜정'은 '용민'을 찾아가고, '용민'은 미분양 아파트에 입주할 사람들을 데리고 온다면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설득한다. 그래서 '혜정'은 같이 산업재해로 남편을 잃은 '수인'(이윤지)을 만난다. '혜정'의 제안으로 시위를 시작하게 됐지만, '혜정'이 기업과 합의한 이후, 막역했던 둘의 사이는 멀어지고 말았다.

그러던 중 '수인'이 시위 도중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잠시 수감되고 마는데, '혜정'은 머리를 써서 '수인'의 아이들을 자신의 집에서 돌봐준다. 감옥에서 나온 '수인'은 아이들이 '혜정'의 집에서 즐거워하는 것을 보고, 새 집을 꿈꾸라고 부추기던 '혜정'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하지만 기존 입주자들은 '할인 분양'으로 이사오려는 '수인'뿐 아니라, 다른 이사 예정자들을 필사적으로 막는다. 입주자들이 교대로 입구에서 자동차의 통행을 검문하는 가운데, 입주자들은 '혜정'이 분양사의 '브로커'인 것을 알게 되면서 비난을 일삼는다.



작품을 연출한 가성문 감독은 2010년대 수도권에서 벌어진 아파트 미분양 할인 사태에 대한 보도를 보면서 영감을 얻었다. 몇 년 동안 미분양이던 아파트의 할인 분양이 시작됐는데, 기존 입주자가 할인 분양 입주자의 이사를 막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치고 검문소를 만들었던 것. 할인 분양의 1차적인 원인은 정부의 부동산 공급 정책 실패와 시장을 읽지 못하면서 비싼 값에 분양가를 책정한 건설 회사에 있었으나, 정작 사태에 놓인 당사자들은 근본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편을 갈라 약자인 피해 당사자들인 서로를 원망했다. 이는 '혜정'이 아파트를 구입하게 된 계기인, 산업재해 진상규명 시위에서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끼리 서로 탓하고, 원망하는 양상이라고 생각한 가성문 감독은, 그들의 행동을 조소하거나,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단정짓지 않으려 했다. 그저 왜 그들은 갈등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관심에서 이야기를 뻗어 나갔다. 보통 이런 소재의 영화들은, 억울한 피해자가 기업을 상대로 정의를 구현하거나, 혹은 기업 논리와 다를 바 없이 살아가는 인간이 피해자를 도우며 스스로를 구원하는 서사가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두 주인공은 억울함을 덮어둘 정도로 힘들어서, 중도에 포기를 한 사람들이었고, <드림팰리스>는 그런 사람들을 위한 영화가 됐다.



하지만 두 사람을 연민한다고 해서, 이들이 옳았고 나머지는 틀렸다는 식으로 그려내면 단지 변명 같은 영화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가성문 감독은 진짜 빌런은 영화 속에 얼굴을 안 내비치려 했다. 얼굴을 비추는 모든 사람(심지어 분양 담당 직원 '용민'조차)은 어쩌면 악인처럼 보일지라도, 묘한 연민이 느껴져야 했다는 것. 그래서 '혜정'을 연기한 김선영의 모습은 매우 흥미로웠다. '혜정'과 같은 '미운 구석'도 많은 복합적인 인물을 세밀하게 연기했는데, 영화의 후반부에서 대사 사이의 빈 공간을 다채로운 표정으로 보여주는 대목은, 그야말로 '명연기'는 이런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이윤지도 김선영과의 연기 합에서 절대 밀리지 않는 모습을 오롯이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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