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의 계절 "도미노처럼 번지는 노동계의 여름 투쟁. 과연 우리는 파업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2022. 8. 29. 20:01투자인사이트

728x90
반응형
728x170
지난 7월 2일, 긴 기다림 끝에 비로소 해외 여행을 떠난 A는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인생 최대치의 아수라장을 목격한다. 샤를 드골 공항에서 노동자 파업이 이뤄지는 사이 1만7000개의 수하물이 제 때 도착하지 못했기 때문. 인력 부족으로 활주로 4개 중 2개가 긴급 폐쇄되며 항공편 결항이속출 하던 와중에 벌어진 일이다. 항공사 부스마다 끝도 없이 늘어선 줄과 긴급한 다국어 방송, 짐을 찾는 인파로 가득한 공항 안에서 A의 머릿속은 혼돈 그 자체였다. 더 놀라운 건 이런 현상이 지금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최근 라이언에어, 이지젯, 스칸디나비아항공 등 유럽 주요 항공사 직원들이 연이어 파업을 단행하며 여름 휴가철이 시작된 여행 시장에 비상이 걸렸다. 런던 히스로 공항은 근로자 파업이 예고되자 9월 중순까지 승객수를 제한하는 이례적 조치에 나서기도 했다. 영국과 프랑스의 철도노조, 독일의 항만노조와 노르웨이의 석유산업노조, 남아공 전력공사노조 역시 대대적인 파업을 진행 중이다. 각국의 항만, 운송, 철도, 항공, 에너지를 중심으로 번지는 대규모 파업. 그 근원에는 전쟁으로 인한 물류 공급난과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가 있다. 장시간 노동과 낮은 급여로 축적된 노동자들의 불만이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만나니 언제든, 어떤 방식으로든 터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은 원인을 공유하는 국내 상황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화물·레미콘·철근 콘크리트 업계부터 여객·자동차·조선·주류 업계까지 전국의 산업 현장 곳곳에서 이른바 ‘파업 도미노’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왜 투쟁하는가
발화점은 지난 6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 연대본부(이하 ‘화물연대’)가 단행한 8일간의 총파업이다. 당시 광범위한 물류대란과 생산 및 수출 차질, 약 1조5868억원 규모의 경제 손실이 크게 부각되며 갈등의 본질은 다소 가려진 측면이 있는데, 사실 파업의 최대 쟁점은 안전운임제의 지속 시행 여부였다. 안전운임제란 화물 운송 노동자를 위한 일종의 최저임금제도. 다단계식 하청과 낮은 운송료로 과로, 과적, 과속이 쌓이며 도로교통안전 문제가 지적되자 이를 개선하기 위해 2020년부터 시행됐다. 문제는 이 제도가 한시적 으로 도입된 터라 올 연말이면 폐지된다는 데 있다. 노조 측은 법 개정을 통해 안전 운임 제의 기간과 대상 확대를 요구한 반면, 산업계에서는 물류 공급난과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이미 부담이 커진 기업 측 입장을 간과하기 어려웠던 것. 사실 안전운임제의 지속 여부는 국회의 입법 사안이라 그 안에서 다양한 논의가 이뤄져야 했는데 정작 정부가 제때 제대로 갈등 조정을 못한 게 가장 큰 문제라는 목소리도 높다. 결국 다섯 차례의 교섭 끝에 국토교통부와 화물연대가 안전운임제 연장 논의에 합의하며 상황이 일단락되긴 했으나 이조차 아주 명쾌한 결말이라 보긴 어렵다. 물류대란을 잠재우기 위해 급히 협상을 타결한 국토부가 여전히 안전운임제에 회의적인 입장을 밝힌 데다 이 제도가 향후 법 개정 과정에서 어떻게 표류할 지 알 수 없으니 여전히 불씨는 남은 셈이다. 파업 기간이 짧지 않은 만큼 후유증도 상당하지만, 무엇보다 화물연대의 총파업은 국내 산업 현장의 최전선에 도사리고 있던 온갖 불균형의 문제를 수면 위로 끄집어 올렸다. 여기에 현 정부의 노동 개혁 방향에 대한 반발심이 더해지며 불씨는 빠르게 번져나갔고, 레미콘·철근콘크리트 업계의 파업이 이어졌다. 화물연대의 협상과는 별개로 하이트 진로 화물차주 노조 파업이 네 달 째 계속되는 한편, 서울과 수원을 오가는 경진여객 노조의 전면 파업으로 광역버스 7개 노선, 107대 버스 운행이 중단된 바 있다. 최근에는 우체국택배 노조와 현대자동차노조가 파업을 결의했다가 간신히 잠정 합의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전국적인 ‘하투(夏鬪)’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현 시점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파장이 큰 사건은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 파업이다. 6월 2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이 하 ‘하청지회’)가 경남 거제의 옥포조선소 내 초대형 원유 운반선에서 시작한 점거 농성이 두 달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것. 대우조선해양의 22개 하청 업체 노동자가 소속된 이 단체는 임금 인상, 교섭 단체 인정 등의 노동 조건 개선을 내걸었다. 이를 지지하는 노동자 3000여명이 거제 시내에 모여 연대 집회를 벌이기도 했다. 대우조선해양측의 입장은 단호하다. 현장 책임자 연합회가 7월 4일 집회를 열고 불법 파업을 성토하며 조속한 공권력 투입을 요청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실제로 선박 진수가 밀려 “일주일에 1250억원의 매출 감소가 예상되고, 2주간 500억원의 인건비 등 고정비 손실이 별도로 발생했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 박두선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7월 6일 담화문을 통해 “하청지회의 불법적인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경영 정상화에 대한 기대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고 밝혔다. 윤장혁 금속노조 위원장의 대응 역시 강경하다. “조선소는 현재 한국 사회의 모순이 폭발하는 그 한복판”이라며 이번 파업은 “한국 사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지키는 투쟁”이라 목소리를 높였다. 즉, 하청지회의 파업이 면에는 조선업의 오랜 불황 속에서 극한에 내몰린 하청 노동자들의 삶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장기화되는 대립 한가운데서 파업에 힘을 실어주는 시민 사회 종교 단체들이 많은 건 그 때문. 민주당, 경남도당 역시 “최근 조선업은 ‘수주 대박’이라는 말이 들릴 만큼 다시 호황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임금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며 “하청 노동자들은 노동 환경 회복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는 상황”이라 전했다. 지난 6월 30일에는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전국 불안정 노동 철폐연대, 다산인권센터 등 인권·법률단체들이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인 산업은행 본점 앞에 모여 “하청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을 지지한다”며 적 극적인 교섭을 요구하기도 했다.
파업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
굵직한 산업 현장의 파업 도미노 현상은 올 하반기에도 계속될 듯하다. 지난 7월 2일, 새 정부 출범 이후 최대 규모의 도심 집회를 벌인 민주노총이 8월 15일 전국 노동자 대회와 9월 공공운수·보건의료노조 결의대회, 10월의 총파업 등을 잇달아 예고했기 때문. 현재 한국타이어노조의 파업이 초읽기 상태고, 보건의료노조 역시 대한의사 협회와 대한병원협회를 대상으로 한 노동기본권 교섭 요구가 거부되면 곧장 파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금속노조의 총파업도 예고돼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이 반복될수록 경제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라 입을 모은다. 글로벌 원자재 가격이 고점을 이어가고 금리와 환율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파업마저 계속되면 기업은 물론 소비자들도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여론도 엇갈린다. 적극적으로 파업을 지지하는 입장도 있지만 ‘과연 노조 파업이 공정한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산업 전체에 피해를 끼치는 건 이기적이라는 의견 역시 많다. 전문가들은 이러 한 부정적 인식이 오늘날 최악의 청년 실업률과도 맞닿아 있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통계청이 발표한 청년층 체감 실업률은 5월 기준 19.8%. 당장 나와 내 친구들은 5명 중 1명 꼴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단기 알바나 비정규직을 전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업 노동자들의 투쟁이 아름답게 보일 순 없을 터이다. 특히 화물연대 파업처럼 가시적인 피해가 속출할 경우 시민들의 불만이 더 커지는 것도 당연하다. 다만 이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상황이 왜 역사 속에서, 또 지금 전 세계적으로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는지는 분명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의 집단적인 파업 행렬은 각자의 입장 차를 이해하고 갈등을 조절하는 과정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결여돼 있었는지를 깨닫게 해 준다. 무엇보다 기업과 노동자는 서로 맞물려야만 제대로 돌아가는 톱니바퀴와 같다. 무조건적인 옹호나 반대보다는 양쪽 모두의 상황을 직시하는 균형 있는 시각이 필요한 이유다.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