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저격 태그니티 마케팅 "나날이 ‘초’세분화되는 취향의 시대. 기업과 브랜드, 플랫폼들은 태그니티 트렌드를 어떻게 마케팅 전략에 녹여내고 있을까?"
2022. 9. 5. 19:53ㆍ생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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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는 예술 영역만이 제한생산의 장을 대표했다면 21세기에는 취향의 영역이 제한생산의 장을 대표하며 대량생산의 장과 충돌하고 있다.” 강원대 영상문화학과 유승호 교수는 저서 <취향의 경제>에 이렇게 썼다. 그는 “이 또한 하나의 마케팅 전략”이지만 “제한생산 전략을 펴는 기업이 점점 늘어나는 것은 제한생산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널리 퍼졌다는 증거”라 말하기도 했다. 제한생산의 가치, 취향의 영역. 모두 시장을 잘게 쪼개 맞춤형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오늘날의 하이퍼 버티컬(초세분화) 마케팅과 맞닿아 있다.
나노사회에서 점점 세분화되는 개인의 취향이 기업과 브랜드의 마케팅 전략을 더 뾰족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 즉, 취향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MZ세대의 태그니티 트렌드를 겨냥한 전술이다. 실제로 누구나 자신만의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진 지금, SNS 로 헤쳐 모이는 커뮤니티의 진화는 기존의 산업 구조에도 상당한 혁신을 일으키는 중이다. 민초단이나 띠부띠부씰 수집가들이 그랬듯, 세분화된 취향만 제대로 저격하면 아주 충성도 높은 ‘찐팬’을 모을 수 있기 때문. 여기서 핵심은 ‘고객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가’인데,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전미영 연구위원의 말처럼 “브랜드만의 태그니티를 고민하고 커뮤니티를 활성화해 팬덤 문화를 형성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는 것”이 현재의 추세다. ‘#(해시태그)’에 기민하게 대응하며 이미 형성된 공동체에서 소구 포인트를 찾기보다는 브랜드 안팎으로 새로운 태그니티가 조성되도록 이끄는 전략이다. 더 좁게, 더 깊게 특히 눈에 띄는 시장은 MZ세대와 함께 급성장한 온라인 플랫폼 업계다.
플랫폼 기업들이 집중하는 건 사용자들의 취향 검색을 더 쉽고 빠르게 지원하는 사용자환경(UI) 및 사용자경험(UX) 서비스. 대표적인 모바일 플랫폼 카카오를 예로 들어보자. 2020년 말 ‘선물하기’ 플랫폼에 해시태그를 도입한 카카오는 올해 대대적인 UI·UX 개편을 통해 태그니티 성격을 더욱 강화했다. 기존 ‘선물하기’ 플랫폼에 ‘랭킹’ 탭을 신설해 선물 받은 사람의 후기 속 태그를 필터링할 수 있는 기능을 도입한 것. 단순히 선물을 주고받은 사람만이 아니라 비슷한 상황이나 맥락을 지닌 타인과도 후기를 공유하는 일종의 커뮤니티 환경이 마련된 셈이다. 네이버의 대응 역시 발 빨랐다. 자사의 쇼핑 카테고리에 스마트블록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태그니티 트렌드를 적용하고 있다.
블록을 하나의 태그로 설정하고 사용자의 취향을 반영해 다양한 주제로 자동 생성하는 형태다. 지난해 말에는 이용자의 관심사를 분석해 연관 상품과 태그를 모으는 인공지능 쇼핑 큐레이션 공간 ‘포유’ 탭을 신설하기도 했다. 리뷰 및 커뮤니티 기능이 특히 중요한 중고거래나 인테리어 플랫폼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번개장터는 이미 지난해 취향 기반 거래를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 대대적인 앱 개편을 단행한 바 있다. 이때 브랜드 중심으로 쉽게 제품을 찾을 수 있도록 브랜드 팔로 기능을 도입했는데, 해당 기능 이용자 수가 약 390% 증가할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최근 오늘의집이 추가한 팔로잉 탭도 눈여겨 볼만하다. 사용자들이 각자의 인테리어를 콘텐츠로 공유하는 오늘의집 은 본래 커뮤니티 기능을 기반으로 성장한 플랫폼인데, 좋아하는 이용자의 소식을 계속 받아볼 수 있는 팔로잉 탭을 신설해 그 기능을 더 공고히 하고 있다.
대대적인 UI·UX 개편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각 브랜드의 ‘큐레이션’ 전략이다. 큐레이션 기능을 잘만 활용하면 취향 공동 체에 특정 태그니티 키워드와 연관된 제품 정보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취향 공동체를 겨냥한 큐레이션의 또 다른 사례가 바로 버티컬 커머스다. 식품, 의류, 생활용품, 인테리어 등 특정 카테고리 제품을 깊고 좁게 파고 드는 전문 몰을 뜻한다. 최근 버티컬 커머스가 보여준 성장세는 팬데믹으로 급격히 팽창한 온라인 플랫폼 시장 내에서도 단연 두드러진다. 특히 성장을 견인하는 분야는 패션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온라인 쇼핑 중 패션 전문몰의 거래액은 13조9531억원. 전년 대비 19.1% 성장한 수치인데, 같은 기간 종합 몰의 패션 부문 거래액이 5.8% 증가했음을 감안 하면 놀라운 결과다. 패션 전문 몰이 이토록 부상한 데는 태그니티 마케팅의 역할이 컸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 각기 다른 연령대를 타기팅 해 보다 세분화된 취향과 성향을 반영하고 큐레이션한 전략이 주효했다는 의미다. 실제로 에이블리(10~20대), 브랜디(20대 초반), 지그재그(20~30 대), W컨셉(20대 중반~30대), 퀸잇(40~50대) 등 근래 거래액이 크게 늘어난 온라인 패션 플랫폼 대부분이 아주 구체적인 타깃 연령대를 공략하고 있다.
이는 세계적인 요가복 브랜드 룰루레몬이 ‘오션’이라는 인물을 페르 소나로 설정했던 것과 같은 맥락. 브랜드 측이 제시한 오션의 나이는 32 세, 연봉은 10만 달러로 여행과 운동을 즐기며 몸매 관리와 패션에 신경 쓰는 전문직 여성이다. 한편, 좀 더 직접적인 방식으로 태그니티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브랜드들도 눈에 띈다.
사패(세상이 사랑하는 패션)’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는데, 그 일환으로 올해 2월 커뮤니티 서비스인 ‘세사패 다이버’를 오픈했다. 꼭 SSF샵 에서 상품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자유롭게 스타일링 콘텐츠를 올리며 소통할 수 있는 패션 리뷰 전문 커뮤니티다.
지금껏 10만 명 이상이 커뮤니티를 방문한 가운데, SSF샵의 고객은 전년 동기 대비 100%나 늘어 났다. 본래 커뮤니티에서 출발한 업계 1위 무신사 역시 구경만 할 순 없을 터. 그동안 패션 브랜드와 모델, 무신사 크루에 한정하던 자체 패션 커뮤니티 ‘무신스 스냅’의 업로드 권한을 전체 고객 대상으로 확대하기도 했다. 자사몰을 운영하는 플랫폼 업체들의 대대적인 커뮤니티 기능 강화는 어느새 고객을 ‘락인’하는 핵심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 1인 1취향 시대의 마케팅 태그니티의 진화 양상이 ‘세분화’로 나타나는 사이, 기업과 브랜드가 직면한 과제도 적지 않다.
우선 각각의 취향 공동체에 충분한 수의 소비자가 자리하고 있는지가 관건으로 떠올랐다.
사실 취향 공동체의 세분화란 “우리나라 인구 수만큼 세분화될 수도 있다는 의미”라는 게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이수진 연구위원의 견해다. 각각의 개인이 자신의 취향을 최우선한다면 한 사람당 하나의 취향을 만들어내는 상황도 가능하다는 이야기. 결국 집결하지 않는 형태로 나아갈 여지가 있는데, 사실 기업 입장에서는 무척 난감한 일이다. “통계청 데이터에 따르면 1990년대만 해도 국내 소비 패턴은 굉장히 고정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설문조사를 해보면 오히려 소득이 높을수록 대중적인 브랜드를 선호하는 등 정형화되지 않은 형태가 많죠. 완전히 ‘나 자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나를 구분 짓다 보니 그 형태가 세분화될 수밖에 없어요.
오늘날 기업들이 더 면밀하게 움직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는 향후 유통기업 플랫폼들이 눈여겨봐야 할 태그니티 마케팅 활용법으로 ‘세계관 구축’을 꼽았다. 커뮤니티가 또 다른 커뮤니티로 확대하며 공고한 영역을 세우려면 하나의 세계관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어떤 기업의 마케팅을 소구할 때 무언가를 ‘아는 사람들’끼리 뭉치도록 만들어주는 게 바로 세계관이거든요. 일단 세계관을 형성해놓으면 사람들이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가 명확히 구분되기 때문이죠. 현재 빙그레의 ‘빙그레우스’나 이마트24의 우주 세계관처럼 많은 플랫폼이 고유의 세계관을 만들어내면서 브랜드에 대한 친밀도를 높이는 전략을 내세우고 있어요. 물론 성공할지 실패할지 여부는 추후 시장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이런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이준영 교수는 헤럴드경제가 주최한 ‘2022 컨슈머포럼’에서 ‘취향이 편향되는 현상’을 꼬집었다.
“SNS가 발달 하면 소통이 더 잘될 것 같지만 오히려 알고리즘에 따라 취향이 편향되는 현상도 심화”된다며 “뜻밖의 발견을 의미하는 ‘세렌디피티’의 가치가 필요하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실제 포켓몬빵의 전국적인 품귀 현상도, SNS를 떠 들썩하게 한 16가지 MBTI 궁합도 브랜드 입장에서는 일종의 세렌디피티나 다름없다. 물론 예기치 않게 물이 들어올 땐 당연히 노부터 저어야겠지 만, 그 뜻밖의 행운을 덮어놓고 기다리기엔 우리 사회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요즘 브랜드들은 크게 두 가지 방법을 찾았다. 커뮤니티를 만들거나, 아니면 세계관을 만들거나. 엔데믹이 이끄는 새로운 변화의 조짐 속에서 취향 공동체가 어느 쪽으로 전진할지는 조금 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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