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인 매력의 빌런이 점령한 극장가!

2022. 10. 5. 20:43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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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매력으로 무장한 빌런들이 올해 극장가를 점령했다.

 

붐비는 공항 한복판, 눈에 띄게 가벼운 차림의 남자가 서있다. 말간 얼굴과는 대비되는 서늘하고 굶주린 눈빛으로, 뚜렷한 목적지도 없이 다짜고짜 승무원에게 “사람이 많이 타는” 항공편을 묻는다. 이쯤 되면 관객들은 직감적으로 안다. 그가 바로 이 영화의 빌런이구나, 곧 승객들을 가득 태운 대형 항공기에 올라 무언가 극악무도한 짓을 벌이겠구나. <범죄도시2>의 퇴폐미 넘치는 근육질 악당과 달리 벌레 한 마리 못 잡을 것 같은 청순한 외모지만, 그의 ‘살짝 돈’ 눈빛, 어정쩡한 걸음걸이에 극장 안의 긴장감도 점차 고조된다. 대배우 송강호에게 “<범죄도시2>에 손석구가 있다면 <비상선언>에는 임시완이 있다”는 극찬을 받은 강렬한 빌런, 류진석의 탄생이었다.
 
올여름 이후 국내 극장가는 사실상 빌런들의 격전지라 봐도 무방하다. 유독 악역 또는 안타고니스트의 활약이 돋보인 작품들이 흥행과 화제성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 팬데믹 이후 첫 1000만 영화에 등극한 <범죄도시2>의 강해상(손석구 분)이나 <한산: 용의 출현>의 와키자카(변요한 분)가 대표적인 캐릭터다. 작품 자체에 대한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비상선언> 속 임시완과 <서울대 작전> 속 문소리의 연기에 대한 호평도 쏟아졌다. 최근 <공조2: 인터내셔날>을 통해 5년 만에 악역으로 귀환한 진선규 역시 기묘한 더벅머리에 함경북도 사투리를 장전한 채 피도 눈물도 없는 범죄 조직 보스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중이다. 사실 매력적인 빌런은 영화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꾸준히 존재해왔다. 단순한 신스틸러를 넘어 주인공을 압도하는 인기와 팬덤을 거느린 캐릭터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코엔 형제의 걸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떠올리면 누가 영화 속 진정한 주인공인지와는 무관하게 소위 ‘단발병 퇴치좌’로 명성 높은 안톤 시거(하비 에르 바르뎀 분)의 숨 막히는 비주얼이 먼저 뇌리를 스치는 것처럼. 글로벌 스타들이 대거 포진한 쿠엔틴 타란티노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 가장 눈에 띄는 배우가 한스 란다 역을 맡은 크리스토프 왈츠라는 데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것처럼. 무엇보다 히스 레저가 <다크나이트>의 조커로 21세기 최고의 빌런을 탄생시킨 2008년 이후, 특히 히어로물에서 빌런의 서사를 강화하는 건 영화의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 전략이 됐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더욱 짙어지는 법. 조커가 말했듯 영웅과 빌런은 서로가 서로를 “완성시키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커 없는 <배트맨>, 타노스 없는 <어벤져스>, 모리어티 없는 <셜록 홈즈>를 우리는 과연 상상할 수 있을까?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일찍이 “악역이 성공할수록 작품도 성공한다”고 말한 바 있다.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차무진 역시 저서 <스토리 창작자를 위한 빌런 작법서>를 통해 “주인공과 빌런은 자석의 양극”이라며 “이제 스토리 감상자들은 주인공에게만 감정이입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많은 평론가들의 의견처럼 점점 더 치열해지는 영화 시장, 드넓은 OTT의 바다를 유영하며 한층 까다로워진 관객들의 입맛이 오늘날 주인공과 빌런의 서사를 진화시킨 가장 큰 원동력일 터. 지금껏 우리 머릿속에 각인된 흥행 영화의 명대사들만 훑어도 빌런의 존재감이 얼마나 작품 전체의 인상을 좌우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를테면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달콤한 인생>)라든지 “내가 왕이 될 상인가?”(<관상>), “어이가 없네?”(<베테랑>) 등은 모두 빌런이 우리에게 남긴 보석 같은 밈들이다.
 
올해 극장가를 휩쓴 빌런들의 활약은 하반기에도 여전히 유효할 듯하다. 10월 개봉을 앞둔 코미디 영화 <대무가>에서는 한때 슬기로운 의사 선생이던 정경호가 카리스마 넘치는 악당으로 분해 주인공과 대립한다. 한편, 범죄자 이송을 소재로 한 하드보일드 액션 영화 <늑대사냥>의 경우 아예 빌런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 명실 상부한 로맨스 장인 서인국이 ‘DNA에 악밖에 없는’ 범죄자들의 범죄자 박종두 역할을 맡아 거칠고 잔인한 반전 매력을 선보일 예정이다. 참고로 이미 한국 영화사에 장첸과 강해상이란 걸출한 캐릭터를 배출해낸 빌런 명가 <범죄도시> 시리즈는 현재 배우 이준혁과 함께 세번째 악당의 등장을 준비하는 중. 최근에는 <베테랑>의 속편 제작을 앞두고 ‘국민 연하남’ 정해인이 악역으로 러브콜을 받았다는 소식도 들린다. 영화 시장과 함께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빌런의 서사. 앞으로 또 어떤 치명적인 악역이 시나리오를 찢고 나와 우리를 극장으로 이끌까. 지금의 추세라면 국내 영화계에 제2의 조커, 제2의 안톤 시거가 등장할 날도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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