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재수사>로 돌아온 작가 장강명

2022. 10. 7. 19:45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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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의 리얼리티를 추적하다

 

데뷔 이래 늘 한국 사회를 풍시해왔던 장강명이 800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을 들고 돌아왔다. 어느덧 11년 차가 된 소설가의 묵직한 한 걸음, 그리고 미래. 장강명은 지금 할 말이 많다.
헤밍웨이는 새벽 5시 일어나 정오까지 글을 썼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A4 10장을 마치고 일과를 시작한다. 움베르토 에코는 시골 마을에서 오전을 집, 오후를 밖에서 보냈고, 한국에서는 장강명이 엑셀로 시간을 기록 관리 할 정도로 규칙적인 글쓰기로 유명하다. 이쯤 되면 소설에도 나름의 일과가 작동하는 걸까 싶은데, <재수사>는 11년 전과 후의 신촌을 오가며 무려 3년이란 시간을 소요했다. 장강명으로서는 매우 이례적 시간 사용법이다.
책이 800페이지가 넘는다.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실은 2021년이 되기 전에 내고 싶었다. 내가 2011년에 데뷔했는데, 10년 차 넘는 사람을 신인이라 하기엔 어렵잖나. 소설가에게도 전성기란 게 있어 50대 중반에서 60대 중반까지, 그때인 것 같다. 내가 일찍 데뷔한 것도 아니라 ‘어떤 걸 남기게 될까’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장편소설이란 게 평생 10여 편일 텐데 그중 대표작이 나와야 하고, 나의 필력도 생각해봐야 하고. 그래서 지금 소설보다 한 체급 높은 소설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3년이나 소요됐다. ‘이젠 놔도 되겠다’란 감각이 있었나. 예전엔 ‘올해 중 꼭 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이번엔 거꾸로 ‘이건 도저히 올해 중에 못 쓴다’는 맘이 들었다. ‘이제 끝이다’란 생각의 반대였던 셈이다. 중간에 슬럼프가 오면서 뒤엎기도 했고, 그런 과정을 거치며 무리하지 말고, 써지는 템포대로 쓰자. 생각이 전환된 것 같다.
 
소설은 11년 전 벌어진 신촌 여대생 살인사건을 모티프로 한다. 다만, 두 개의 중심 화자가 홀·짝수 챕터로 나뉘어 평행하게 흘러가는 구조다. 범죄 소설이란 게 전형적 포맷이 있는 장르다. 사건이 벌어지면 추적하는 사람이 있고,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플롯, 구조가 있다. 처음엔 나도 그런 식으로 썼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고, 그건 한국 사회에 의문을 제기하는 스토리였다. 시스템 밖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필요했고, 범인이야말로 시스템 밖에 있는 사람이잖나. 그 부분이 정면에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홀수장은 거의 철학서처럼도 느껴진다. 처음엔 살인을 저지른 ‘죄의식’에 대해 자문하지만, 이후 사회 전반의 시스템을 의심하는 고민으로 이어진다. 짝수장의 형사들 역시 현대 한국 사회의 가치와 갈등, 구조적 알레고리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중량감 있는 작품을 쓰고 싶다는 큰 목표가 있었다. 한국 사회에 질문을 던지고 싶었고, 내가 한국 사회를 진단해온 텍스트를 분석하고 싶었다. 약간 추상적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짝수장에 관해서는 엔지니어적으로 접근한 부분이 있다. 이를 문학적이지 않다고 할 수도 있지만, 엔지니어링이 들어가는 게 좋은 문학인 경우도 있다. 물론 알아차리면 문제겠지만, 이후 점검을 하는 과정에서 티가 난다고 느끼지 못했다. (짝수장 주인공) 연지혜란 캐릭터는 가장 만족스럽기도 하다.
 
그리고 그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게 ‘구체화’의 작업이다. 단순히 살인을 저지른 죄책감이 아닌, 어디서 기인하는 불안이고 공포인가라는 물음. 형사들의 일상도 세세하게 소개, 묘사되어 있다. 머릿속으로 구상하는 뼈대만 있으면 되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실감이 드러나야 하고, 플롯뿐 아니라 전개 과정이나 장면 장면에 충분한 디테일이 있어야 한다. 당시 취재했던 형사에게 다시 연락해 좀 더 들어보고, 막히는 부분, 캐릭터 모르겠다 싶으면 다시 그 부분 취재해 쓰고. 그런 게 도움이 됐다. 내가 소설가로 천부적 재능이 있다는 생각은 별로 없지만, 어쩌면 이게 꽤 강력한 기술이란 생각이 들었다.
 
신문기자 경험이 효과를 발휘한 셈인가. 현실이란 게, 현실만이 가진 특성이 있다. 논픽션이나 다큐를 볼 때마다 느끼는 놀라운 설득력이란 게 무시할 수 없다. 디테일 없는 현실이란 없지 않나. 주제 의식을 갖고 기술에 품을 들일 수 있다는 게, 소설가로서 도움을 받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구체화’의 과정이 정반합의 구도를 떠올린다. 범인 안에는 서로 다른 세 개의 자아가 있고,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도 세 명이다. 헤겔은 칸트와 마르크스 그 사이기도 한데(웃음). 헤겔이나 정반합 같은 걸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대위법을 생각했다. 음악에서 카논이나 푸가와 같은 것들. 소설에서 짝·홀수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그 둘이 별개는 아니다. 홀수장에서의 테마가 짝수장에서 변주되고, 분명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다만 서로 대립하는 게 있을 때 ‘합’이 나올까….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다시 한번 신촌(데뷔작 <표백> 역시 신촌이 배경이다)이 등장했다. ‘신촌은 추구하는 가치도, 문화도, 영혼도 없는 곳’이라 이야기한 적이 있던데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신촌은 ‘새로운 마을’이란 뜻이다. 신촌을 싫어하는 건 아닌데(웃음) 말씀대로 신촌이란 게 뉴타운이고, 새로이 개발될 때 다들 신촌이라 불렀다. 그런데 그게 지난 100년의 일상적 개발 방식이었다. 아무것도 없던 곳에 만드는 마을이니 당연히 역사가 없다. 문화도 밖에서 가져온 것, 얄팍함, 단절이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방식의 개발이었던 거다. 지금의 신촌은 장사 안 되는 동네 그 이상의 어떤 당혹스러움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체성을 묻는 작업, 문학적으로 표현하면 영혼을 탐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타협’이란 말을 한 적이 있다. ‘북콘서트는 하기 싫다’는 칼럼을 쓰고 북콘서트를 하면서 했던 이야기인데(웃음), 타협이란 개인의 도덕과 윤리, 사회적 시스템이 서로 일부를 양보하고 취하는, 그야말로 균형의 작업이기도 하다. 나는 소설에서도 삶에서도 리얼리티를 존중하는 사람이다. 취재 작업도 리얼리티를 찾아 도움을 받는 일이고, 리얼리티란 강건하고 나름의 질서, 관성을 갖고 있다. 물론 리얼리티가 부당할 때도 있지만, 나의 아이디얼리즘을 건설하기 위해 리얼리티를 지워낸다는 건, 생리적으로 찬성하지 않는다. 타협이라기보다는 현실에 대한 존중? 요즘 같은 상황에선 내가 리얼리티에 압도되지 않고 다음 세대를 상상하는 사람이라 느끼기도 한다. 상상이란 훈련이다. 상상도 정교해야 하고 논리를 갖춰야 한다. 내가 리얼리티를 존중하는 만큼 리얼리티의 샅바를 잡고 힘을 겨루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재수사>를 끌어안고 있던 지난 시간 가장 영향을 받은 현실은 무엇일까. 한국 사회가 퇴행한다는 생각을 꽤 오래전부터 했다. 아마 10년은 된 것 같은데, 그때는 조심스러웠다면, 최근엔 ‘내가 맞구나’ 생각했다.(웃음)
 
작품에 도스토옙스키가 많이 등장한다. <표백>은 <악령>이 시작이었고, <재수사>는 <죄와 벌>을 의식했다고 했다. 도스토옙스키는 새삼, 무엇인가. 도스토옙프스키는 인생을 바꾼 소설가다. 문학이 무얼 할 수 있는지 보여준 작가이고. 어떤 면에선 닮고 싶지 않은, 동시에 닮고 싶은 작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직한 기분은 ‘어라 또 도스토옙스키, 신촌이네?’ 정도다. 도스토옙스키를 좋아하지만 조지 오웰, 존 스타인벡도 좋아하고, 가장 좋아하는 소설은 제임스 엘로이의 <블랙 달리아>다.
 
여전히 엑셀 파일로 시간 관리를 하나. <재수사>는 그 가운데 변수였을 것도 같다. 지금도 한다. 다만 매년 단행본을 냈지만 지난해는 건너뛰었다. 처음이었다. 그런데 필요했던 경험이었단 생각도 한다. 장편소설이란 게 시간을 잡아먹는 작업이지만, 수입으로 따지면 강연을 다니는 게 더 낫다(웃음). 하지만 내 직업은 단행본 저술업자니까,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나의 본령이라 생각하는 것을 계속 하기 위해 정리해야 하는 것, 그 결과가 곧 루틴이 되었다고도 느낀다. 나는 단행본 저술업자, 작가, 그리고 무엇보다 소설가가 직업이고, 그렇게 불리고 싶다.♥
계속 쓰기 위해 ‘읽기’의 미래를 건설하다 장강명의 ‘낮과 밤'
지식공동체, ‘그믐’ 장강명의 명함엔 소설가란 직함과 함께 ‘그믐’이란 회사명이 적혀 있다. 그의 2015년 장편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 떠오르지만, 그의 아내 김혜정 대표가 2021년 5월 시작한 책을 읽는 공동체 ‘그믐’ 이다. ‘읽기’가 실종되어가는 시대에 다시 ‘읽기’를 선언하는 활동이자, 책 읽는 장강명을 비롯해 지식을 갈망하는 숨은 독자들이 모여 ‘읽다’를 실천하는 커뮤니티다. ‘그믐’의 말뜻은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6년 만의 장편소설 <재수사> 11년 전 신촌에서 벌어진 여대생 살인사건을 2022년의 시점으로 다시 파헤치는, 한국 사회에 대한 ‘재수사극.’ 범죄자의 독백과 사건을 쫓는 형사들의 이야기가 홀·짝수 장을 나뉘어 전개되며, 잡지 못했던 범인, 밝혀지지 않았던 이야기, 사회 구조적 병폐와 그로 인해 비극이 반복되는 현대 사회의 공허함을 드러내고 해부한다. 무엇보다 장강명의 리얼리티와 그를 사유하는 철학의 서사가 날카롭게 부딪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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