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4. 21:06ㆍ문화
잊을 만하면 터지는 역사 왜곡 논란이 우리의 근본적인 대처 방식을 자문하게 한다.
이번 사건의 파장이 유독 심각한 건 중국 측의 고의적 연표 편집이 다분히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연상시키기 때문. 동북공정이란 중국이 2002년부터 추진한 ‘통일적 다민족국가론’ 사업의 일환이다. 현재의 중국 영토 내 모든 역사가 자신들의 소유라는 기괴한 논리 아래, 고구려를 포함한 동북방의 역사를 통째로 중국사에 편입시키고자 했던 것. 2020년에는 한복과 김치가 중국에서 유래했다고 우기더니 올해 베이징 동계 올림픽 개막식 때는 한복 차림의 조선족 여성을 등장시켜 분노를 유발하기도 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의 박선미 한국중세사연구소장은 <싱글즈>와 인터뷰를 통해 “한국사 연표 삭제는 중국 정부의 역사 왜곡 단계가 어디까지 왔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 강조했다.
“중국 국가박물관이 보여준 태도에 대해 우리는 매우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언뜻 중국의 역사 왜곡으로 인한 한중 역사 갈등 문제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중국은 지금 세계 질서를 중국 중심으로 재편하려 하고 있어요. 이를 위해 자국사를 새로 쓰고 세계사도 자국사 중심으로 다시 썼습니다. 우리뿐 아니라 베트남이나 티베트 등 오랜 교류국의 역사까지도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시켜 왜곡하고 있고요. 중·미 관계를 축으로 한 세계 질서 재편을 배경으로 자국 중심적 역사 인식이 국가 간 갈등을 부추기는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의 지적처럼 최근 중국의 집요한 역사 왜곡은 동북공정을 넘어 세계사적 관점의 문화 침탈이라는 것이 학계의 주된 의견이다. 중국의 패권주의 역사관이 이미 다른 차원으로 확대된 상황인데 우리의 인식과 대응은 여전히 동북공정 차원에 머물러 있다는 우려도 크다. 이번 논란을 봉합하는 과정 역시 동북공정이 외교적 문제로 대두됐던 2004년을 떠올리게 한다.
중국 외교부가 홈페이지의 한국 역사 소개란에서 고구려를 제외하며 논쟁이 확산됐는데, 당시에도 중국 측은 수정과 사과 대신 일괄 삭제를 택한 바 있다. 고구려사 문제에 정치적으로 개입하지 않겠다는 구두 합의도 이뤄졌지만, 대중과 한국 정부의 관심이 차례로 수그러드는 사이 중국은 관련 연구를 교묘히 이어갔다. 대규모 예산을 들여 교과서를 바꾸고 간행물을 쏟아냈다. 결국 관심을 잃은 이슈는 힘도 잃는 법. 역사 왜곡이 끝나지 않는 첫 번째 이유다. 다만 전문가들은 감정적인 대응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논쟁이나 갈등을 마치 그 나라 사람들 전부의 생각인 양 확대해석 하는 건 올바른 대응방식이 아니겠지요. 되도록 차분하고 이성적인 태도로 사태의 본질과 경위를 알림과 동시에 우리 정부나 기관들의 대응 노력도 적극 홍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국제사회에 한국사를 제대로 알리려는 시도 역시 중요하다. 오늘날 역사의 진실이란 국제적 위상이나 힘겨루기의 결과에 따라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다. “한국사의 국제화는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고대사나 현대사의 최근 연구 성과를 국제 학계에 알리고 역사 담론을 제시함으로써 동북아 역사 화해의 기초를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의 패권적이고 배타적인 자국 중심주의를 염려하는 국제사회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들로 하여금 비판의 목소리를 내도록 하는 스마트 파워도 필요하죠.” 박선미 소장은 역사 왜곡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모니터링하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중국, 일본과 협력하며 공존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라는 한 단계 높은 질문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양심 있는 현지 학자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것 역시 당장 속 시원한 해결책처럼 보이진 않겠지만 현실적으로 역사 왜곡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그의 말처럼 결국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서’일 터. 쉽게 들끓는 분노보다는 냉정한 상황 판단과 합리적인 해결책의 모색이 절실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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