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17. 15:02ㆍ문화
▲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 (주)NEW
"농구 좋아하세요?"라는 '채소연'의 물음에 '강백호'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농구를 좋아한다고 외친 후, '북산고교 농구부'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성장담을 그린 <슬램덩크>. <슬램덩크>는 1990~96년 '주간 소년점프'에서 연재된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만화로 시작해, TV 시리즈, 게임 등 다양한 '미디어 믹스'로 만들어져 명실상부 20세기 말 최고의 농구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한국만 놓고 보더라도 만화책은 1,450만 부가 넘게 팔렸고, 1998~99년 SBS에서 방영된 TV 시리즈는 20%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박상민이 부른 오프닝곡 '너에게로 가는 길'은 '당시의 낭만'을 상징하는 노래가 됐다.
그 낭만을 먹고 자란 30대와 40대(놀라운 이야기도 아니지만, 50대 이상도 있다), 그리고 새로 접근하게 될 10대, 20대까지, 전 세대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슬램덩크>가 20여 년 만에 다시 도달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이노우에 다케히코 감독이 10년 이상 전부터 제작 오퍼를 받은 작품이다.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다르다 생각하며, 제작 거절을 이어간 감독은 2014년에 들어서야 OK 사인을 내린다. CG 등 기술의 질도 보장이 되었겠지만, 어디까지나 기술은 '수단'이라 생각한 감독은 인물들의 '얼굴'에서 강하게 호소하는 듯한 만든 제작진의 영혼을 봤다고.
20대 시절인 23살부터 29살까지 6년간 <슬램덩크>를 연재한 이노우에 다케히코 감독은 만화가로 계속 성장한 시기에 놓여 있었다. 그는 주인공('강백호')은 몸집이 크고 엄청난 능력을 갖춘,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캐릭터로 설정했다. "소중한 한 시기만을 잘라내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끝냈다"라고 밝힌 감독은 이후 여러 경험을 통해 시점과 가치관의 변화를 느꼈다. 그래서 "아픔을 안고 있거나, 극복하는 존재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모두 아픔과 함께 살고 있지 않나"라면서 이번 작품의 각본이 쓰인 계기를 밝혔다.
그래서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주인공은 '강백호'(키무라 스바루/강수진 목소리)가 아닌 '송태섭'(나카무라 슈고/엄상현 목소리)일 수밖에 없었다. 원작에서 '송태섭'의 가족 이야기는 그렇게 잘 그려져 있지 않았으나, 이번 작품에서는 '송태섭'의 가족 이야기가 상당히 깊게 그려진다. 형 '송준섭'(카지와라 가쿠토/박성영 목소리), 어머니(소노자키 미에/소연 목소리), 동생 '송아라'(쿠노 미사키/송하림 목소리)와의 관계는 '북산고교'와 세계관의 최강팀이라 할 수 있는 '산왕공고'와의 전국대회 경기 사이에 '플래시백'처럼 등장한다.
보통 '플래시백'을 남발하면 영화의 몰입을 저해하는 요소로 지적받을 수 있지만,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플래시백'을 통해 같이 뛰는 팀 동료와의 관계 설정, 그리고 왜 '산왕공고'와 만나 이겨야만 하는지에 대한 이유 등을 보충하는 역할을 해준다. 여기에 작품의 중심인 경기 장면이 워낙 폭발적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플래시백'은 완급 조절을 해주는 장치가 됐다. 경기 중에는 다른 선수들의 성격을 유추할 수 있기 때문에, <슬램덩크>의 초심자라 하더라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심지어 작품을 보고 나면, 당장이라도 넷플릭스에 있는 TV 시리즈를 정주행할 수 있다)
단연,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하이라이트는 섬세하고 사실적인 농구 장면들이다. 애니에서 볼 수 있는 과장된 장면도 있겠지만, 작품의 주요 경기 장면은 실제 경기 중계 화면을 보는 것처럼 10명의 선수가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중계 화면에서만 볼 수 있는 앵글, 잭 스나이더 감독도 고개를 끄덕일 슬로우모션 등을 적절히 사용하면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농구 영화'로 따져봐도 최정점에 오를 수 있는 작품이 됐다. 만화는 만화, 영화는 영화만의 즐거움이 있을 거라 판단해 '농구다움'을 우선시하고자 했던 이노우에 다케히코 감독의 선택이 옳았던 것.
그 선택이 가장 확실하게 드러난 대목은 작품의 클라이맥스였다. 꽉 찬 극장에 그 누구도 클라이맥스에선 소리를 낼 수 없었고, 관중의 환호성이 가득했던 극장은 일순간 침묵의 현장이 됐다. 고요한 순간을 함께 경험한다는 것 자체가 '영화적' 경험이었다. 그런 경험과 다시 낭만을 제공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최근 개봉한 일본 TV 애니메이션의 '극장판' 중 가장 빠른 속도로 흥행몰이를 이어가는 작품이 됐다. 심지어 원작 책도 판매량이 급증했고, 개봉 2주 차에 상영관을 늘리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만큼, 침체한 극장가에 희망이 되어주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슬램덩크>, 영광의 시대는 바로 지금부터일지 모른다.
by 알지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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