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 : 남친 때문에 꿈도 포기한 여친이 결국 선택한 것

2023. 2. 17. 16:31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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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 ⓒ (주)영화특별시SMC

'이준호'(이동휘)는 미대를 졸업하고, 이것저것 해보려 했으나 실패하면서 '공시생'이 된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사귀고 있는 '한아영'(정은채)와 동거하면서 생활의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다. '아영'은 촉망받는 미대생이었으나, '준호'의 뒷바라지를 위해 꿈 대신 부동산 중개인이라는 현실을 택한다. 처음엔 '준호'를 믿어서였겠으나, 그다음부터는 뭔가 오기가 생겨서였고, 몇 년이 지난 후에는 익숙해져서 지난한 연애를 버티고 있었다.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는 제목처럼, 어쩌면 오래전에 헤어졌을지도 모르는 사이, 그저 인정하지 않았을 사이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다양한 단편을 만들었던 형슬우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는 연애담보다는 이별담에 중심을 뒀다. 먼저, 왼쪽 목에 담이 걸린 남자가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태블릿을 돌려주러 갔다가 남은 감정을 확인하는 단편 <왼쪽을 보는 남자>의 기획에서 출발했다. 감독은 "담에 결리는 설정은 고등학생 때 겪은 일에서 착안했다"라면서, "온종일 고개가 돌아가지 않아 왼쪽을 보고 생활했는데, 하교 종이 치니까 마법처럼 풀렸다. 은연중에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랬던 것 같았다"라고 밝혔다. 식은 사랑의 감정에서 발생한 '준호'의 잔여 감정은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작품 구상을 하게 됐다고.



영화는 의도적으로 '준호'와 '아영'이 행복했던 순간을 배제했다. 그들의 좋았던 연애의 순간을 몽타주, 플래시백과 같은 기법으로, 혹은 같이 찍은 사진 등의 소품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혼자 끓여 먹는 라면의 이미지(이미 싱크대에 들어가 주워 담아 먹을 수도 없게 된 상황), 사주풀이로 보는 연애와 결혼 운세 등으로 점차 싸늘해지는 연인의 모습을 묘사할 뿐이었다. 이는 마치 2년 된 커플이 이별하는 과정을 담아낸 코미디 영화 <브레이크업 - 이별후애>(2006년)를 떠오르게 한다. 형슬우 감독은 <사랑이 뭘까>(2018년), <결혼 이야기>(2019년),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2021년) 등 비슷한 작품들에서 영감을 얻었다.

감독은 어느 순간 이 커플이 이별할 타이밍을 놓쳤다고 생각했다. 20대 중반에 헤어졌으면 빠르게 다른 사람을 찾았을 텐데, '아영'은 결별 선언을 하는 것이 두려웠을 수도 있었고, 결별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다. 반대로, 자유분방한 성격이 있었으나, '아영'의 눈치만 보고 살던 '준호'는 일종의 '안도감'에 잠식되어 있었다. 다행인지 아닌지, '준호'와 '아영'은 헤어진 후,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서로 다른 인물을 만난다.



'아영'은 사무실을 찾던 남자 '유경일'(강길우)을 만난다. 그는 지난한 연애에 지쳤던 '아영'의 마음을 들어주고 공감해준 인물이었다. '준호'는 동거 집에서 쫓겨나 동생 '민섭'(고규필)이 차린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살아가고 있었던 중 집착이 심한 남자친구와 이별하게 된 손님 '최안나'(정다은)를 목격한다. 전 남자친구와 달리, 헐렁하고 풀이 죽은 모습이 끌린 '안나'는 다짜고짜 만나자고 연애를 시작한다. 동갑의 '아영'과 달리, 연하의 '안나'는 '준호'에게 오히려 "스트레스받지 말고, 좋은 것, 재미난 것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해준다.

형슬우 감독은 '경일'이 '준호'와 또 다른 방식으로 기만을 하는 인물로 설정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던 인물이었으나, 속은 '아영'을 기만하는 인물로 만든 것.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아영'을 기만하는 인물이고, '준호'와 같음에도 다른 방식으로 '아영'의 감정을 힘들게 만든다. 직업군이나 성격은 다르지만, 결국 '아영'에게 돌아온 것은 배신감이었다. 영화에서 전체적으로 '아영'은 성공적인 연애를 하지 못한다. 클라이맥스에서 '아영'은 미련을 다 '준호'에게 토해내면서 홀가분해진 느낌을 얻는다. 그러면서 앞으로 훨씬 더 좋은 사람을 만나기를 바라는 감독의 소망도 드러낸다. 이는 반대인 '준호'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그렇게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는 충무로 영화판에서 사라진 것 같은 '로맨스' 장르의 영화가 다시 살아난 느낌을 받게 해준 의미 있는 작품이 됐다. 특히 배우들의 능숙한 생활 연기에서 오는 장기 연애의 이별과 새로운 연애, 그 후의 변화는 익숙하지만, 우리 근처의 연인들이 보여주는 그것을 보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by 알지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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