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다음 소희 : 누가 이 18살 소녀를 사라지게 했나?

2023. 2. 17. 15:04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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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다음 소희> ⓒ 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김소희'(김시은)는 단짝 친구 '쭈니'(정회린)와 함께 시간 보내는 것과 선배 '태준'(강현오)와 춤을 추는 것이 가장 즐거운 18살 고등학생이다. 불의를 참지 않고, 할 말은 할 만큼 씩씩하고 똑 부러지는 성격의 '소희'는 졸업을 앞두고 "나도 이제 사무실 여직원이 됐다"라는 설렘과 기대를 안고 현장실습을 나간다. 하지만 '소희'가 나간 대기업 통신회사의 콜센터(하청 업체)는 기대와는 다른 공간이었다. 고객의 해지를 '방어'하는 것이 '소희'의 임무였는데, 가뜩이나 '해지'를 원하는 고객들의 욕설 섞인 말에 스트레스를 받는 '소희'는 '해지 방어' 실적이 온전히 채워지지 않아 빈번한 야근 업무를 하게 된다.

극심한 감정 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소희'는 자해를 시도했고, 며칠 후 저수지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만다. 오랜만에 서에 복귀한 형사 '오유진'(배두나)은 복직하자마자 '소희'의 사건을 맡는다. '유진'은 마지막 자취를 되짚어가던 중, 무언가를 발견하고 차마 지나치지 못한다. 개인적인 일로 한동안 경찰서에서 자리를 비웠을 때, 춤을 추기 위해 연습실에 있었던 어느 날, 자신과 스친 적 있던 아이가 '소희'였던 것. 사건을 빨리 덮자는 윗선의 지시에도, '유진'은 누구에게도 말해지지 않았고, 아무에게도 발견될 수 없던 고독이 낯설지 않아 사건을 외면하지 않는다. 하지만 수사가 계속되면서, '유진'은 자괴감을 얻고 만다.



지난해 칸영화제, 한국 영화의 큰 화제작은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 그리고 이정재 감독의 <헌트>가 있었다. 국내 메이저 배급사가 참여한 세 편의 영화에 이목이 집중했을 때, 묵묵히 박수받은 작품이 있었으니, 한국 최초 칸영화제 비평가 주간 폐막작으로 상영된 <다음 소희>였다. <다음 소희>는 의붓아버지로부터 폭력을 당한 어린 소녀 '도희'와 마을 파출소장으로 좌천된 경찰 '영남'의 이야기를 담은 장편 데뷔작, <도희야>(2014년)를 연출한 정주리 감독의 복귀작이다.

정주리 감독은 어떤 정치적 의도나, "지금 당장 바꿔야 한다"라는 내용의 사회적 메시지를 <다음 소희>에 담고 싶지 않았다. 그저 자신과 상관없다고 여겨졌을 사건들이 '나'라는 개인과 어떻게 연결되고, 나아가 그것이 우리 사회의 작동 방식과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탐구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인지, 2017년 1월, 한 고등학생이 콜센터 현장실습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다음 소희>는, 실화가 줄 수 있는 '달콤한 신파'를 일절 허용하지 않는다. 그저 관객 '나'가 자신의 처지와 상황에서 영화를 봐주기를 원했고, 그래서 담담한 어조로 여지를 두면서 영화를 전개할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정주리 감독은 관객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왜 고등학생이 업무에 능숙한 성인도 힘든 열악한 환경에서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으로 일을 하고 있는가? 왜 특성화고 아이들은 그런 곳에 보내져야 하며, 왜 이런 일은 거듭 반복되는 것인가? '개인'의 안타까운 사연에 눈물을 흘리고 나면, 끝날 일인가? 이런 일은 정녕 '나'와는 관계가 없는 것인가? 그렇기에 영화는 '이번 차례의 바로 뒤'라는 의미가 담긴 '다음'이라는 명사를 '소희'라는 개인의 이름 앞에 붙여 넣었다. <다음 소희>가 단 한 명의 마음(감정 노동자들에 대한 폭언을 자제한다던가)이라도 바꾸고, '다음'이라는 명사가 사라지길 바랐기 때문.

한편,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은 '소희'의 춤으로 장식된다. 여러 이유로 '꿈'이라는 희망적인 단어가 사라진 '소희'였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온몸을 움직여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춤'이었기 때문. '소희'는 자신이 틀린 동작을 반복하면서 연습하지만, '소희'는 끝내 그 춤을 온전히 마무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소희'의 살풀이와 같은 춤은 분명, 관객에게 어떤 불꽃을 타오르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남길지도 모르겠다. '한 개인이 목숨을 끊은 일'이라고 치부하기에, 어떤 한 목숨이 '현장실습 사상자 숫자'로만 바뀌어 남겨지기엔, 우리 사회 혹은 기업, 정부(고용노동부, 교육부)가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by 알지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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