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18. 00:08ㆍ문화
▲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오기 직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는 그야말로 한국 극장 흥행의 보증수표와 같은 존재였다. 3편의 천만 영화가 있는 유일한 할리우드 프랜차이즈이며,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작품에 출연하는 할리우드 스타 배우들이 꾸준히 한국을 찾기도 했다. 한때 '마블민국'이라는 별칭도 있었던 상황에서, MCU는 한 세대의 마무리인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년)을 끝으로 맥이 없는 움직임을 보였다. 중간에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2021년)이 엄혹한 팬데믹 속에서 고군분투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이벤트'와 같은 역할을 해주는 사건이 등장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팬데믹 시기, MCU의 수장 케빈 파이기는 숨 고르기를 하면서 '페이즈4'로 '멀티버스 사가'를 빌드업했다. 축구에서는 득점하기 위한 밑그림을 의미하며, 전임 국가대표 감독 벤투호의 '상징'처럼 느껴졌던 '빌드업'이란 단어는 "결과를 위해서 단계를 쌓아가는 과정"으로 표현해도 무방하다. '페이즈4'는 전체적인 이야기를 하나로 뭉치기보다는, 기존의 히어로들을 떠나보내거나, 즉시 전력감인 히어로를 새롭게 보여주거나, 미래의 히어로를 등장하는 과정으로 꾸며졌다.
그 와중에 새로운 세계관인 '멀티버스'까지 열어버렸으니, 기존 '어벤져스' 멤버들에 대한 진한 향수가 있는 관객들에게는 '허풍선' 같은 소리였을지 모르겠다. 심지어 '디즈니+'에서만 볼 수 있는 시리즈들을 봐야 내용 전개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극장용 영화만을 보는 관객이라면 내용 전개에 부담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작품에 등장한 세계관은 <앤트맨>(2015년)부터 등장한 '양자 영역'이었다. 물론, 정확히 말하면 '발만 살짝 담근 세계'였다. 빌런을 물리치기 위해서 '앤트맨'(폴 러드)이 방문한 공간이었고, '앤트맨'의 어머니 '재닛 반 다인'(미셸 파이퍼)가 불의의 사고로 오랜 세월 방문한 공간이었다.
'현실 세계'에서 생계를 위해 도둑질을 일삼던 전과자 '스캇 랭'이 어쩌다 자신의 몸을 줄였다, 키웠다 할 수 있는 '앤트맨' 수트를 입게 된 것이 2편의 <앤트맨> 시리즈가 주로 보여준 것이기에, '양자 영역'이라는 세계는 필연적으로 이질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질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한국 관객들에게 이 공간은 대대로 '흥행 불모지'와 같은 곳이었다. 당장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를 보면서 떠올리는 작품들이 <스타워즈> 시리즈, <닥터 후> 시리즈인데, 이 작품들이 국내에서 '마니아'가 있긴 있으나, 본고장 미국이나, 영국처럼 '엄청난 파급력'을 보여주진 않기에, 시큰둥한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번 영화는 기시감 넘치는 SF 영화들이 주로 담아내는 이야기를 고스란히 답습했다.
'양자 영역'이라는 세계관을 제대로 설명하기에도 버거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다양한 조연 캐릭터들(혹은 세력)이 등장하는데, 이들에 대한 상황 소개는 일부 '게임 NPC'들이 다음 임무를 알리기 위해 던지는 의미 없는 메시지만큼이나 깊이가 얕다. '양자 영역'에 있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만 중심으로 펼쳐도 충분히 흥미로웠을 영화는 끝내 차기 '타노스'의 위치에 설 인물 '정복자 캉'(조나단 메이저스)를 내세우면서, '멀티버스' 이야기까지 설파한다. '시간'이라는 무기로 모든 것을 지배하겠다는 위험한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나서던 중 '유배'를 당한 '캉'은 조나단 메이저스의 솔깃한 연기에도 불구하고, 왜 자신이 강력한 존재인지를 온전히 보여주지 못하고 퇴장한다.
분명, '앤트맨'과의 첫 대면에서 '다스 베이더' 만큼의 '초크 포스'를 보여주던 '캉'은 정작 클라이막스에 들어서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며 아쉬움을 줬다. '인피니티 사가'의 메인 빌런, '타노스'가 강렬했던 이유는 몇몇 '쿠키 영상'에서 조금씩 모습만 나왔던 그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처음부터 그때까지만 해도 강력한 '어벤져스'로 우리가 알고 있었던 '헐크'와 붙어 이겨버렸기 때문이었다. 말로는 여러 세계의 '어벤져스'를 잡았다는 '캉'이 '앤트맨' 하나도 제대로 못 잡으면서, 어떻게 다른 MCU 메인 세계관 속 '어벤져스'와 싸워 이기겠다는 말인가?
그나마 첫 번째 쿠키 영상에서 나름의 단서를 주긴 하지만, 앞으로 나올 '캉'의 활약이 '멀티버스라는 큰 세계에서 펼쳐지는 집단끼리의 물량 싸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것 같다는 불안감마저 끼얹고 말았다. 나아가, MCU에서 '멀티버스'가 존재하는 이유가 현재 '페이즈3~4' 사이에 퇴장된 일부 '유명 캐릭터'들을 되살리기 위한 '수단' 정도로는 보이지 않은 것도 불안감을 가중한다. (만약 그런 일이 진짜로 일어난다면,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의 '감동'이 아닌 '악몽'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MCU의 수장 '케빈 파이기'는 알아야 한다.)
물론,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는 새롭게 MCU에 들어오려는 관객들에게도 기초적인 '오락 거리'를 제공한다. 문제는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기존 '마블민국' 관객의 기대에 충족할 수 있는 액션, 혹은 장면이 있느냐인데,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렇게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는 '페이즈4' 영화들이 그러했듯이, '페이즈6'의 <어벤져스: 캉 다이너스티>(2025년)와 <어벤져스: 시크릿 워즈>(2026년)를 위한 '빌드업용' 영화가 됐다. (그래도 MCU가 한국 축구가 그런 것처럼, 뚝심으로 밀고 나가, 끝내 목표를 달성하는 마무리를 보여주는 걸 간절히 바라본다.)
by 알지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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