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18. 01:41ㆍ문화
▲ 영화 <유령> ⓒ CJ ENM
영화 <유령>은 1933년, 일제강점기 시대의 경성에는 항일 조직 '흑색단'이 있었고, '흑색단'의 스파이가 '유령'이라는 이름으로 비밀리에 활약하고 있었다는 가상 설정으로 시작된다. 어느 날, 신임 총독의 암살 시도가 남산에 세워졌던 '조선 신궁'에서 벌어진다. 상해에서 '유령'을 잡는 함정을 설계해 일망타진한 장본인으로, 신임 총독의 경호대장인 '다카하라 카이토'(박해수)는 총독부에 '유령'이 잠입했다고 판단한다. 가짜 암호 전문을 내려보내 덫을 치고, 영문도 모른 채 덫에 걸린 5명은 벼랑 끝 외딴 호텔에 감금된다.
그중엔 명문 '무라야마 가문' 7대로, 조선말과 사정에 능통해 성공 가도를 달리던 엘리트 군인이었으나, 좌천되어 경무국 소속 총독부 총신과 감독관으로 파견된 '무라야마 준지'(설경구)가 있었다. 그는 '유령'을 찾으려는 덫에 걸린 후, 자신이 용의자가 됐음에도, 군인 시절 경쟁자였던 '카이토'보다 먼저 '유령'을 찾아, 화려하게 경무국으로 복귀하려 한다. 여기에 신임 총독 암살 시도가 있던 날, 행동 대원 '유령'(이솜)의 죽음을 목격한 총독부 통신과 암호 전문 기록 담당 '박차경'(이하늬), 도발적인 매력을 무기 삼아 조선인임에도 총독부 실세인 정무총감 직속 비서 자리에 오른 야심가 '유리코'(박소담)도 호텔에 감금된다.
그밖에 두 조선인 남성으로, 일본어와 암호 체계에 능통한 통신과 암호 해독 담당 '천은호' 계장(서현우)과 '박차경'과 함께 통신과에서 일하는 젊은 직원 '백호'(김동희)도 호텔에 감금된 채, '카이토'의 수사망에 잡히고 만다. 나갈 수 있는 길이라고는 무장한 이들로 가득한 '호텔 정문'이 전부인 상황에서, '유령'의 정체는 누구이고, 살아 나갈 수 있을까에 대한 궁금함으로 시작된 작품은, 그러나 '밀실 추리극'일 줄만 알았던 처음의 설정을 깨부수면서 달려 나간다. <유령>은 마이지아 작가의 중국 소설 <풍성>과 이를 바탕으로 한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 <바람의 소리>(2009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작품을 연출한 이해영 감독은 작가 시절부터 독특한 소재와 악조건을 뚫고 나아가는 인물들을 그리는 시선에 감정을 발휘한 바 있다. 데뷔작인 <천하장사 마돈나>(2006년)에서는 여자가 되고 싶어서 성전환 수술 비용 마련을 위해 씨름에 나선 소년의 이야기로 주요 신인감독상을 휩쓸었고, 두 번째 작품 <페스티발>(2010년)은 다양한 성적 페티시즘을 둘러싼 인물 군상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려냈다. 세 번째 장편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2015년)도 일제강점기 아픈 여학생들이 다니는 기숙 학교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를 담았고, <독전>(2018년)도 원작 <마약전쟁>(2013년)과 다른 결로 연출해 호응을 얻었다.
얽히고설킨 캐릭터들의 개성과 서사를 영화의 기본 동력으로 삼았던 이해영 감독은 암흑의 시기라 할 수 있는 일제강점기에서, 암흑을 뚫는 '유령'의 이야기가 주는 전복, 그리고 총기 액션에서 주는 짜릿함을 전달한다. 이해영 감독은 "첩보 장르를 표방한 이야기의 시작은 정적이고 차갑다"라면서, "그러나 이야기가 본격화되고, 다양한 캐릭터들과 얽히고 넓어지면서부터 영화는 점차 역동적이고 뜨거운 온도로, 가속이 붙고 과열이 된다. 그리고 마침내 장르의 틀에서 탈출하여 폭발하는 정점의 순간, 억압의 시대를 향해 사자후를 토해내는 해방감을 꿈꾼다"라고 밝혔다.
<마약전쟁>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석한 것처럼, <유령> 역시 이해영 감독은 자신만의 스타일리시함으로 바꿔낸다. 대표적으로, 주성림 촬영감독은 <캐롤>(2015년)에서나 볼 법한 촬영 구도로 인물의 섬세한 심리를 그려냈고, <범죄도시> 시리즈를 촬영한 경력답게 액션의 동선도 잘 잡은 영상을 보여준다. 소품의 활용도 흥미로운데, 담배와 성냥이 타오르는 불꽃과 같은 의지를 상징하면서, 동시에 연대의 상징이기도 할 수 있다는 걸 드러냈다.
여기에 할리우드 황금기 대표작 <드라큘라>(1931년), <상하이 익스프레스>(1932년), 그리고 한국 영화사 최초로 우리 민족의 자본과 기술로 만들어진 작품 <장화홍련전>(1928년)의 포스터와 영상이 사용되어, 당시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달해준다. 한편, <유령>에서 빛나는 존재들은 단연 이하늬와 박소담으로, 항일 영화들이 주로 남성 중심으로 움직였던 것과 달리, <유령>은 오롯이 여성 배우들(이솜과 이주영도 주목해야 한다)에게 그 배턴을 넘겨 진행한다. 그동안 우리가 미처 몰랐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는 대사도 있기에, 이들의 활약은 더욱 빛날 수 있었다.
결국, <유령>은 각자의 방식으로 시대에 맞섰던, 뜨거운 사람들의 이야기로 회자하기를 바란 이해영 감독의 소망이 처음부터 끝까지 진하게 남은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by 알지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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