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동감 : 22년 만에 돌아온 멜로 명작, 어떻게 바뀌었나?

2023. 2. 18. 13:01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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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동감> ⓒ CJ CGV

'밀레니엄 시대'를 알렸던 2000년(물론 엄밀히 따지면 2001년이 21세기의 시작이겠지만), 한편의 로맨스 영화가 관객의 마음을 울렸었다. <동감>은 1979년에 사는 '윤소은'(김하늘)과 2000년에 사는 '지인'(유지태)이 개기월식을 통해서 우연히 연결된 무전을 계기로 소통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운명'에 대해 통찰하는 시간을 제공했었다. '지인'이 운명을 부정하면서 무전기를 박살 내려 할 때, 이를 본 대학교 수위(신철진)는 "세월은 그렇게 흘러가더라고"라고 말하며 자리를 뜬다. '운명'이 정해진 것인가, 혹은 그 '운명'은 앞으로 살아가며 자신이 내리는 선택으로 이뤄진 결과의 연속인가라는 여운을 남기는 순간이었다.

주인공들이 있는 카페에서 흘러나오던 임재범의 '너를 위해'나, 김광민 피아니스트가 연주한 아련한 멜로디가 담긴 '슬픈향기', 그리고 '윤소은'과 '지인'이 엇갈리는 순간에 흐르는 'G선상의 아리아'의 선율은 영화에 대한 좋은 생각을 현재까지도 갖게 해준 존재들이었다. 그런 영화가 지난 4월 리메이크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이 찾아왔다. 학번을 95학번과 21학번으로, 시대를 1999년과 2022년으로, 과거와 현재를 사는 주인공의 성별을 바꾸면서 변화를 취했다고는 하지만, '단순히 그 시절의 낭만을 현재로 가져오고 싶었다'는 의도로 리메이크를 하는 것이 옳으냐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



그 의문은 여지없이 이뤄지고 말았다. 리메이크의 주인공, '용'(여진구)은 1999년에 사는 기계공학과 95학번 대학생이다. 신학기를 맞아 '용'은 신입생 '한솔'(김혜윤)의 학교생활을 돕게 되면서 사랑에 빠진다. '한솔' 역시 '연애 경험'이 부족해 서툴지만, 자신의 마음을 순수하게 표현하려는 '용'에게 관심을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용'은 원작처럼 우연한 계기로 무전을 통해 2022년에 사는 사회학과 21학번 '무늬'(조이현)와 교신이 된다. 두 사람은 서로가 같은 시대에 살지 않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기까지 일정의 시간이 필요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서로의 존재를 인정한 후, 두 사람은 서로의 삶, 연애 등을 이야기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상영 시간의 문제로 인해서인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과정은 대거 축소가 됐다고. '카카오톡'과 '휴대전화 018'로 서로의 차이를 부각하기만 했을 뿐이었고, 전화 부스에 있는 낙서로 서로의 존재를 파악하는 장면은 설득력을 다소 잃고 말았다. 심지어 '설레는 감정'의 시기를 각색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아쉬움도 포착된다. 현재 말로 표현하면 '썸' 시기에 끝나버린 원작 속 '소은'의 사랑과 달리, '용'은 '한솔'에게 고백하고, '한솔'은 이에 수락한다. "운명의 상대를 만났다"라면서 환호하며 '오락실 데이트' 등을 즐기던 것도 잠시, '무늬'의 미래 이야기에 '용'은 '한솔'의 모든 행동에 의심하기 시작한다.



대놓고 <백 투 더 퓨처> 시리즈에 나오는 '타임 패러독스'를 떠올리며 대사를 하는 '용'의 사랑이, 일면식 없는 사람의 말로 식어가는 게 워낙 잘 보이니, 관객은 '용'에게 마음을 두기 어려워지고 만다. 그러니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김광진의 '편지'가 들려오는 순간에는 슬퍼야 하는 감정이 아닌, 예능에서 주로 나왔던 '웃픈 브금'의 감정이 앞장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원작에서 주는 '운명론적 사랑'은 이뤄지지 못할 사랑에서 나온 슬픔이었지, 현재를 살아가는 동안 이뤄진 사랑에서 헤어지는 슬픔이 아니었다.

여기에 '무늬'가 사는 2022년의 모습도 올드해 보였다. '싸이월드'에나 나올 법한 사랑, 꿈, 낭만의 이야기를 '용', 혹은 발표 시간에(발표 수업 때 맨 뒤에 앉은 학생까지 모두 발표자의 이야기를 듣는 모습은 작위적으로 느껴질 정도) 들려주고, "헐"이나, "베프"라는 표현을 시시때때 쓰는 것을 보아하니 '무늬'의 시대는 2000년대, 조금 봐줘도 2010년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쩔티비"라는 단어도 사어가 될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2022년의 시대상은, 그저 주인공 사이에서 나오는 학자금 대출과 관련한 이야기, 교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인권과 관련한 이야기 등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동감>은 X세대, Z세대 모두에게 이질적일지 모르는 사랑을 담아낸, 극중 "레트로가 유행이라며"라는 '무늬' 친구의 대사처럼, 유행에 편승한 기획 리메이크 영화가 된 것 같은 아쉬움만 남겨줬다. 풋풋한 사랑의 빌드업을 만들어가는 배우들의 열연이 그나마 빈 자리를 채우는 정도였는데, 혹여나 속이 아려오는 감정을 느껴보고 싶다면, 원작을 찾아보는 것이 훨씬 이로울 듯싶다.

 

by 알지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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