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영웅 : 'K-레미제라블'을 꿈꾼 '영웅', 어땠나?

2023. 2. 18. 22:13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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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영웅> ⓒ CJ ENM

<해운대>(2009년), <국제시장>(2014년)으로 한국 최초의 '쌍천만 흥행'을 기록한 윤제균 감독이 돌아왔다. 앞선 작품이 각각 할리우드의 재난 블록버스터나, <포레스트 검프>(1994년)를 한국적으로 각색해 흥행한 가운데, 2009년 초연되어 현재도 공연 중인 동명 창작 뮤지컬을 바탕으로 한 <영웅>을 들고 온 것. 이제야 '충무로 대자본'이 개척을 시작한 국내 뮤지컬 영화 시장에서, <영웅>은 창작 뮤지컬을 이식한 최초의 사례(2019년 촬영되어 2020년 개봉이 진행되었어야 했으나, 팬데믹의 여파로 현재로 개봉 시기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 <투란도트 어둠의 왕국>(2021년)이 제작되어 개봉했다)가 됐다.

물론, 국내에서 '뮤지컬 영화'의 흥행이 대박으로 이어지려면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었다. 먼저, 배우들이 '매체 연기'를 하다가 갑자기 '무대 노래'를 부르는 것에 대해, 관객이 어색함(판타지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을 느끼지 말아야 한다. 혹은 '뮤지컬 넘버'를 부르는 과정에서 나오는 개연성 붕괴도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뮤지컬 영화의 '흥행 지표'들이 필요했다. 다행히 최근 10년 사이에 몇몇 뮤지컬 영화들이 관객의 사랑을 받았는데, <레미제라블>(2012년), <라라랜드>(2016년), <알라딘>(2019년)은 대표 사례가 됐다.(홍보사는 연일 <영웅>의 흥행 기록을 다른 뮤지컬 영화들과 비교해 보도자료를 발표하고 있다)



윤제균 감독은 뮤지컬 <영웅>을 관람한 후 영화화를 계획했다고 밝혔다. 영화는 원작 뮤지컬에서 일부 넘버들은 과감히 삭제하는 한편, 새로운 장면을 추가하면서, 최대한의 개연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오프닝은 비슷했다. 1909년 3월, '안중근'(정성화)이 동지들과 함께 3년 이내에 '이토 히로부미'(김승락) 통감을 처단할 것을 '단지동맹'(왼손 넷째 손가락 첫 관절을 잘라, 혈서로 '대한독립'을 썼다)으로 맹세한다. 여기서 영화는 변주를 꾀한다. 시계를 조금 더 과거로 돌려, '안중근'이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아들, 남편으로의 평온한 삶을 뒤로 한 채 진공 작전을 펼치던 1908년으로 향한 것.

'안중근'은 '만국공법'에 따라 다른 부대원들이 죽이려고 한 일본군 포로들을 석방하지만, 이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풀어준 일본군 포로의 밀고로 인해, '회령 전투'에서 기습당하며 수많은 동지를 잃고 만 것. 이 전투 장면은 뮤지컬 무대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기에, 윤제균 감독은 자신이 연출했던 <국제시장>의 오프닝 '흥남 철수' 장면만큼이나 힘을 주며 촬영을 진행했다.



이후, 영화는 '명성황후'(이일화)가 시해된 것을 목격한 조선의 마지막 궁녀(가상 인물이다) '설희'(김고은)가 '이토 히로부미'의 동향을 파악하는 스파이로 활동하는 과정을 동시에 담아내는데, 뮤지컬에는 없던 새로운 넘버인 '그대 향한 나의 꿈'이 등장한다. 2019년 공연부터 추가된 '내가 기다리는 것' 넘버처럼, 조국을 되찾기 위한 강인하고도 간절한 '설희'의 의지를 드러내는 넘버로, 다른 인물들이 멈춰진 순간에서 캐릭터가 넘버를 부르는 시점이나 상황, 멜로디 등이 흥행작 <알라딘>의 'Speechless'를 연상케 한다.(물론, 뮤지컬의 남성 중심 작품에서, 여성 캐릭터들이 주로 부르는 '다짐의 노래'들이 이런 형태를 종종 띈다)

그리고 <영웅>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둣가게를 여는 '마두식'(조우진)과 '마진주'(박진주)를 중국인('왕웨이', '링링')에서 독립군을 돕는 한국인으로 변경한다. 한국어, 일본어까지 등장하는 가운데, 중국어 넘버까지 등장할 경우 복잡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고. 그러면서, 원작에서는 '링링'이 유부남 '안중근'을 연모하는 인물로 등장했고(과거 공연에서는 '링링'이 '안중근'에게 기습 키스를 하는 장면도 있었다), 이를 없애고 대신 '유동하'(이현우)와의 사랑으로 '큐피트의 화살' 위치를 바꿨다. 아쉽게도 '링링(마진주)'과 '유동하'가 함께 부르는 넘버가 2곡에서 '사랑이라 믿어도 될까요'로 줄어들었지만.



<영웅>의 킬링 넘버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누가 죄인인가' 같은 경우도, 재판장이 열리는 곳 안에서 앙상블이 "누가 죄인인가"를 외쳤던 것을, '안중근'의 아내 '김아려'(장영남)와 앙상블이 입구 앞에서 부르는 연출로 대체한다. 또한, 관객의 눈물샘을 가장 많이 자극하는,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나문희)가 부르는 넘버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 같은 경우는 대사처럼 읊조리는 노래를 택하며, 원작과는 다른 감동을 준다.

분명 <영웅>은 뮤지컬 원작의 힘, 그리고 배우의 힘, 무엇보다 '위인의 힘'에 기댄 측면이 강한 작품이다. 배우로만 이야기하자면, 2009년 초연부터 관객과 공명한 '안중근' 역의 정성화를 과감히 캐스팅해 '오리지널리티'를 잘 살린 것도 있겠고('영화의 티켓 파워'를 염두에 둘 만 했겠지만, 윤제균 감독의 선택으로 이뤄진 결정이었다고), 정성화는 역시나 압도적인 가창력을 통해 관객의 이입을 완벽히 도와줬다. 작품의 또 다른 축인 '설희'를 소화한 김고은이나, '조마리아'를 맡은 나문희의 '원 포인트 활약'도 분명 곱씹어 볼 긍정 요소였다.



다만, 과거 윤제균 감독의 영화에서 나왔던 '유머 혹은 슬랩스틱 개그' 강박은 영화의 전체 톤과 매너에 어울리지 않았다. 일명 '만두송'이라 불리는 '배고픈 청춘이여' 넘버에서 1950~60년대 할리우드 뮤지컬의 코믹곡 넘버 연출처럼 '부담스러운 정면샷'을 사용한 것, '와이어 캠'을 남발해 계속해서 넘버를 부르는 배우 주위를 돌고 또 도는 연출을 선보인 것도 작위적이었다. 이런 지적은 앞으로 나올 수 있는 한국의 '다른 뮤지컬 원작 보유 영화'들을 위해서는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by 알지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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