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to be traveller 본능적으로, 여행

2022. 8. 28. 00:36해외여행

728x90
반응형
728x170

본능적으로, 여행

버스도 기차도 없던 먼 옛날에도 누군가는 여행을 떠났다. 천상의 낙원에도 위험천만한 오지에도 여행자가 다다랐다. 불굴의 의지라기보다 타고난 본능에 가까운 우리의 여행에 대해 생각해본다.

왜, 여행을 떠날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다. 설사 지난 여행에서 환승 비행기를 놓쳤거나 일정 내내 비바람이 몰아쳤거나 심지어 배낭을 도둑맞았다 해도 대부분의 사람은 또다시 여행 이야기에 설레고 다음 여행은 어디로 떠날지 고민한다. 이런 모습을 두고 일찍이 프랑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즉 여행하는 인간이라 정의했다.
영어 ‘Travel’이 ‘여행한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은 14세기 무렵이다. 고대 프랑스어 ‘Travail’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하는데, 이 단어에는 놀랍게도 ‘일하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 알파벳을 그대로 사용해 영어 ‘Travail’이라고 쓰면 ‘고생, 고역’을 가리키며, 여기에 전치사 in을 붙이면 ‘산기(産期)가 돌아, 진통으로 괴로워하여’라는 말이 된다. 어원에서 보듯 여행은 사실 여행을 준비할 때와 기차나 버스, 비행기를 타고 떠날 때를 제외하면, 대체로 고생스럽고 조금 힘들며 때에 따라서는 불운도 겪는다. 그러나 여행이 고생스럽기만 할 뿐이라면, 인간은 호모 비아토르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고생을 감수하고라도 여행을 떠나는 것일까?
위키백과 ‘여행’ 항목에 “가장 이른 수도자 여행가”로 기록된 석가모니는 도를 닦고자 여행에 나선다. 호화로운 왕자의 삶을 뒤로하고 떠난 길에서 그는 다른 수행자의 수행을 따라 하는 등 시행착오도 겪었으나, 결국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된다. 탐험가이자 항해사인 콜럼버스는 신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뱃길에 올랐다. 왕실의 지원을 받는 일도 배를 띄워 나아가는 과정도 온갖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약 2개월간의 여정 끝에 비록 인도라고 착각하기는 했지만 북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 소설가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에서 생애 첫 해외여행에서 비행기 멀미를 걱정해 일명 키미테라는 이름의 패치형 멀미약을 붙인 채 중국으로 떠났다는 웃음 섞인 일화를 적으며,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저마다의 이유로 떠났지만 이들의 여행에는 닮은 구석이 있다. 바로 <여행의 기쁨>에서 실뱅 테송이 “여행자는 언젠가 노획물을 잔뜩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약탈자”라고 표현한 것처럼 그것이 깨달음이든 신대륙이든 나 자신이든 ‘노획물’을 얻어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가 여행하는 거의 모든 이유 역시 이 ‘노획물’을 얻기 위함일 터다.

요즘, 여행자

그리하여 오늘도 우리는 비록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일상과는 다른 곳에서 새로운 일을 경험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생각과 몸의 변화를 기대하며 여행을 떠나는 중이다.
최근 여행 트렌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스테이케이션(Stay+Vacation)’이다. 준비할 것도 많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장거리 여행지 대신 집에서 가깝되 집과는 다른 공간을 여행지로 택해 휴가를 즐기는 방법이다. 몇 년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해 이제는 친숙한 ‘호캉스(Hotel+Vacance)’가 대표적인 스테이케이션이라 할 수 있다. 호텔에서 즐기는 휴가가 좋은 이유에 대해 소설가 김영하는 앞선 책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호텔은,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집이 아니다. 어떻게 다른가? 집은 의무의 공간이다. 언제나 해야 할 일이 눈에 띈다. 설거지, 빨래, 청소 같은 즉각 처리 가능한 일도 있고, 큰맘 먹고 언젠가 해치워야 할 해묵은 숙제도 있다. (중략) 오래 살아온 집에는 상처가 있다. 지워지지 않는 벽지의 얼룩처럼 온갖 기억이 집 여기저기에 들러붙어 있다.” 그의 말처럼 꼭 휴가철이 아니더라도 호텔을 찾는 이들이 느는 이유도 생활이 주는 피로와 스트레스를 피해 휴식을 취하는 가장 간편하고 안전한 휴가지가 호텔이기 때문이다.
2016년을 전후로 불기 시작한 ‘한 달 살기’ 여행은 또 다른 형태의 스테이케이션이라 할 수 있다. 관광 명소 위주로 계획을 세워 돌아다니는 여행과 달리 한 달 살기 여행은 그야말로 여행지의 주민이 되어 여행을 일상처럼 즐기는 것이다. 처음에는 국내 제주를 중심으로 시작되었으나, 점차 확대되어 최근에는 태국 치앙마이, 인도네시아 발리, 포르투갈 포르투 등이 한 달 여행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여행지’의 ‘주민’이 된다는 것은 일상이 된 생활에 얽매인 원주민도, 정착을 위해 생계에 목매는 이주민도 아닌 그저 ‘내’가 되어 지금 이 시간을 온전히 살아보는 일이다. 여행 콘텐츠 제작소 ‘여행에미치다’ 직원들이 쓴 책 <회사 문 닫고 떠난 한 달 살기>에서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떠난 두 직원은 “4주 차. 좋은 빈티지 매장이며, 식당, 주변 여행지까지 모두 섭렵했다. 할 수 있는 일도 점점 많아진다. 옷을 사기만 했던 플리마켓에서 내 옷을 팔기도 하고, 심심하면 주변의 좋은 곳으로 언제든 놀러 갈 수 있다. 이제 우리는 그냥 현지인에 더 가깝다”며, 현지인과 어울리고 여유 있게 여행을 즐기는 한 달 살기의 매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디지털 시대가 열려 위성 사진과 각종 SNS를 통해 지구 반대편 모습까지 속속들이 볼 수 있게 된 지금, 여행은 곧 내가 누린 휴식과 내가 맛본 음식, 내가 만난 사람, 내가 걸은 길이다. 내 안의 호모 비아토르를 믿고, 집 근처 호텔이든 해외로 한 달 살기든 일단 떠나자. 어떤 여행이든 돌아올 때는 분명 두 손에 무언가를 꼭 쥔 자신을 발견하게 될 테니 말이다.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