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 올해 최고의 스포츠 영화, 단연 이 일본 영화다

2023. 6. 21. 20:36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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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 (주)디오시네마

'케이코'(키시이 유키노)는 청각장애인 프로 복서로, 권투 입문 2년 만에 프로 시합에서 승리를 따내며 몇몇 매체의 인터뷰 대상이 됐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케이코'가 비장애인 선수와 대결을 펼친다는 것은 전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판의 말, 라운드가 시작되고 끝나는 종소리, 코치의 즉각적인 지시, 상대의 펀치가 날아오는 소리 등 모두 들을 수 없기 때문. 그런데도 '케이코'는 체육관 회장(미우라 토모카즈)으로부터 인정을 받는다. 여러 이유로 체육관을 닫아야 했던 회장은 '케이코'의 근면 성실함을 가장 큰 무기라고 여겼다.

동정, 혹은 인간 승리의 대상으로 '케이코'를 보지 않는 영화,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케이코'의 루틴을 철저히 따라간다. '케이코'는 아침에는 강변을 걷고, 뛰면서 체력 단련에 나섰으며, 점심엔 호텔에서 체크 아웃된 객실을 청소하며, 밤에는 권투장에서 훈련한다. 이 루틴의 반복을 옆에서 계속해서 지켜보던 회장은, 권투장을 닫아야 하는 상황 속에서 다음 시합을 앞둔 '케이코'의 모습이 연신 눈에 아른거린다. 2022년 72회 베를린영화제 '엔카운터' 부문에 초청됐고, 국내에서는 27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첫선을 보인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올해(애니메이션, 상업, 독립을 가리지 않고) 개봉한 스포츠 장르 작품 중 단연 발군이라 할 정도로 특색 있는 영화였다.



영화는 왜 '케이코'가 권투를 시작하게 됐는지를 직접 보여주지 않는다. 어린 시절 따돌림을 받았지만, 어떻게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었다는 어머니의 말, 수화를 구사할 줄 아는 직장 동료와의 소통 중 "일에서 나온 스트레스를 푼다"라고 언급한 게 전부였다. '케이코'는 언젠가 자신이 권투를 그만둬야 할 상황이 올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몇 경기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비장애인 선수 중 조금 더 강력한 선수가 나타난다면 패배의 순간이 찾아올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 하지만 '케이코'는 미래보다는 현재, 다음 시합에 충실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스포츠=승리'라는 공식에서 벗어나, 한 사람의 고군분투가 더 중시된 영화가 지닌 자세가 여기 있던 것이었다.

참고로 이 영화는 배경 음악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비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이 받아들이는 정보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음성 정보나 음악에 의존하지 않고, 이야기의 흐름과 감정의 전달에 지장이 있지 않은 범위 내에서, 이에 걸맞은 연출을 통해 '케이코'의 감정을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다. 또한, 비장애인에게는 당연한 생활의 모습인 '소리가 들린다'가 주인공 '케이코'에게는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한 음의 설계를 고민했다고. 미야케 쇼 감독은 각본을 집필하는 단계부터 이 고민을 시작했고, '케이코'가 특정 장면에 있을 때, 주변에서 어떤 소리가 나고,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케이코'가 어떤 반응을 할 지에 대한 고민을 시나리오에 모두 담아냈다.



여기에 최근 개봉한 <카운트>처럼, 보통 복싱을 소재로 한 영화는 움직이는 인물의 생생한 모습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핸드헬드 촬영 기법을 많이 사용하는데, 이 영화는 그와 정반대의 촬영 방식을 택했다. 세상에 온몸으로 맞서고 있는 '케이코'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기 위해 일부러 카메라를 고정해 놓고 촬영한 것. 극 중 '케이코'의 몸 전체에 일어나는 변화를 관객들이 지긋이 응시하게끔 함으로써, '케이코'의 마음을 볼 수 있을 거라는 미야케 쇼 감독의 판단이었다.

또한, 4K 촬영이 일반적인 요즘 영화 제작 흐름에서, 미야케 쇼 감독은 16mm 필름이라는 아날로그 감성을 선택했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 주인공의 모습이 아니라, 불안과 망설임, 기쁨과 정열 등 여러 가지 감정 사이에서 동요하면서도 한 걸음씩 착실히 나아가는 한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려내는 방법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태평양 전쟁 이후 아버지가 열게 된 권투장을 건강, 돈 문제로 닫아야 하는 회장의 모습을 기록하기에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리고 '코로나19'를 관통한 평범한 서민들의 모습을 보여주기에도, 디지털보다는 지글거리는 필름이 좋은 선택처럼 보였다.



한편,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올해 초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받은 키시이 유키노의 활약이 없었다면 완성되지 못할 영화였다. '케이코'를 소화하기 위해 키시이 유키노는 복싱과 수어를 백지상태에서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복서에 어울리는 근육을 만들기 위해 촬영 전까지 매일 7시간씩 근력 운동과 함께 복싱의 기초부터 엄격한 트레이닝을 이어 나갔다. 또한, 청각장애인연맹으로부터 정식으로 수어를 배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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