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영화 1만5000원 시대

2022. 9. 6. 19:17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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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만5000원까지 치솟은 영화 관람료. 과연 회복 중인 극장가에 ‘호수’일까, ‘악수’일까?

 

종로의 단관 극장을 전전하다 처음 멀티플렉스를 찾은 2000년대 초, 8000원에 달하는 티켓 가격을 보며 멍해졌던 기억이 있다. 똑같은 영화를 보는데 왜 공간마다 가격이 다른지, 콜라며 팝콘은 또 왜 그렇게 비싼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던 시절. 영화가 일상의 낙인 대학생에게 영화 관람료란 밥값을 줄여서라도 메워야 하는 단호한 고정비였던 터다. 그런데 요즘 극장에 가면 그 시절의 공포가 다시 떠오른다. 주말 영화 1만5000원. 눈을 의심케 하는 숫자가 떡하니 영수증에 찍혀 나온다. 2인 1조 관람에 팝콘과 콜라 세트까지 얹으면 5만원도 우습다.
 
실제로 팬데믹 이후 첫 ‘1000만 영화’가 나온 극장가는 지금 어느 때보다 활기가 넘치지만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 사이에선 불만의 목소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2년이 채 안되는 기간 동안 멀티플렉스 3사의 영화 관람료가 40%나 올랐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성인 2D 기준으로 주중 1만원, 주말 1만1000원이던 티켓 가격이 각각 1만4000원과 1만5000원으로 바뀐 것.
 
보통 관람료 인상은 2~4년에 한 번씩 진행되며, CGV가 총대를 메면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가 뒤따르는 식으로 이뤄졌는데 2020년 하반기부터 최근까지 같은 상황이 세 차례나 반복됐다. 주말 관객 수가 200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빠르게 회복 중인 극장가에서 굳이 지금, 또다시 관람료를 올린 이유는 무엇일까?
 
멀티플렉스 측에선 심각한 경영 위기 속에서 영화산업을 정상화하고 보존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입장이다. 지난 4월, 가장 먼저 1만5000원짜리 티켓을 판매하기 시작한 CGV의 경우 2년간 국내 영업손실이 약 3668억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 져 있다. 7월부터 인상을 단행한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 역시 지난해에만 각각 1212억과 683억 이상의 적자를 기록했다. 강화된 방역 정책으로 인한 손실에 최저 시급과 물류비, 원·부자재비와 같은 고정비 상승까지 더해져 경영 위기가 한층 심화된 것.
 
실제로 한국 영화산업의 전체 매출은 극장 관람료에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구조다. 특히 관람료의 50% 이상이 배급 및 투자 제작사에 배분되는 만큼 극장 손익이 영화계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무시하기 어렵다. 3사는 저마다 “매우 송구스럽다”면서 도 27개월간 누적된 적자를 만회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며 “영화산업 전체의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입을 모으는 중이다.
 
하지만 관객들의 온도는 사뭇 다르다. “극장의 손실은 이해하지만 상승폭이 너무 과하다”는 의견,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들었는데 극장만 그 피해를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가하려는 분위기가 불편하다”는 이야기가 적잖이 들린다. 꾸준히 감축해온 극장 인력이 아직 충원되지 않아 매점 이용이나 관람 시 환경은 오히려 이전만 못하다는 불만도 높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사실 영화 관람료 자체에 대한 부담감이다. 4인 가족 기준으로 관람료 6만원, 팝콘과 음료 2인 세트 메뉴 가격이 최소 1만원, 여기에 교통비나 추가 외식비까지 더하면 실로 만만치 않은 주말 나들이 비용이 나온다. 이는 최근의 살인적인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더라도 다소 지나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미 영화 팬들 사이에선 ‘꼭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와 ‘나중에 VOD나 OTT로 봐도 되는 영화’를 가리는 일도 예사다.
 
최근 <범죄도시2> <탑건: 매버릭> 같은 블록버스터에 비해 <브로커> <헤어질 결심> 등 작품성은 인정받았으나 상대적으로 잔잔한 영화들의 흥행 성적이 기대만 못한 데는 이 같은 심리가 깔려 있는 것. 가격 인상이 오히려 영화산업 부활의 자충수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쏟아지는 이유다. 현재 대부분의 OTT 한달 구독료가 1만원 안팎인만큼 영화 수요가 언제든 OTT로 옮겨 갈 수 있다는 불안 요소도 크다. 물론 당장 관람료가 인상됐다고 관객들이 다시 극장에 발길을 끊으리라 전망하는 건 무리가 있다.
 
우리가 그토록 엔데믹을 기다린 이유, 극장이라는 공간에서만 체험 가능한 요소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의 말처럼 “이 가격으로 만족스럽게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다른 방법이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다만, 1만5000원을 내고 2D 영화를 보느니 2만원짜리 아이맥스관을 찾는 게 남는 장사처럼 느껴지는 상황에서 과연 우리 영화 생태계가 건강하게 회복될 수 있을까? ‘믿고본다’던 대배우들 앞에서도 티켓 구매가 망설여지는데 독립·예술영화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정말로 한국 영화산업의 미래를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관람료 인상 외에 도저히 다른 회복 방법은 없는지, 극장가에 깊은 고민과 모색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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