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의 마음
2022. 9. 23. 01:10ㆍ문화
728x90
반응형
728x170
시작-과정-결과. 저마다의 성향에 따라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는 다르다. 셋 중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하냐는 질문에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과정과 결과에 특히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두는 것 같다. 둘 사이에서 어떤 것을 우선 순위로 놓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쉽게 마주할 수 있다. 하지만 과정과 결과도 시작에서 비롯한다. 시작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추석을 앞둔 서울 잠실역에서, 나는 시작의 의미를 다시 떠올렸다. 그곳에는 복권 명당으로 소문난 작은 매점이 있다. 시간을 가리지 않고 매일 사람들이 줄을 서 복권을 사는 곳이다. 추석 전주에는 안 그래도 복잡한 지하철역 입구를 가릴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지나가며 ‘나도 한 장 사볼까?’ 싶은 생각조차 금방 달아나게 만드는 인파다. 그 순간 오래된 드라마 속 대사가 떠올랐다. 우연히 만난 여자에게 반한 남자는 용기를 내어 고백한다. 그리고 거절하는 그녀 앞에서 이야기한다. “복권을 사지도 않고 당첨을 바랄 수는 없어요. 하나라도 내 손에 쥐고 있어야 어떤 결과든 찾아올 수 있죠.”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우리는 왜 처음의 순간을 쉽게 잊는 걸까. 출발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일까? 문득 최근 몇 달 동안 새롭게 시작한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게 떠올랐다. 루틴으로 묶어도 좋을 빤한 일상이 지루하게 재생되고 있을 뿐이다. 9월 16일과 8월 16일의 일과에는 차이가 없다. 7월 16일, 6월 16일도 마찬가지다. 지난한 일상과 다르게 주변은 빠르게 변한다. 온갖 트렌드가 새롭게 솟고, 다양한 팝업 스토어가 시작과 종료를 반복해서 알린다. 한국에서 첫 시작을 예고하는 새로운 브랜드의 소식도 끝이 없다. 모니터 속에는 출발을 알리는 새로운 아이돌 그룹이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낸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내 일상은 누가 ‘리피트’ 버튼이라도 누른 듯하다. 똑같은 음악만 끊임없이 반복되는 중이다. 뭔가 새로운 걸 시작하는 게 쉽지도 않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 이제는 마음먹기조차 쉽지 않다.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려고 하면 덜컥 겁이 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용기가 부족하다. 그렇다고 시시하게 살 수는 없다. 가장 먼저 <싱글즈> 10월호에서 소개한 공방을 찾아 재미있는 취미를 만들 생각이다. 그러다 보면 낯선 사람과도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거다. 그렇게 사귄 새 친구들과 요즘 핫한 디저트를 먹으러 가는 것도 좋겠다. 생각만 하면 할 것이 많고, 마음만 먹으면 시작할 수 있는 것이 가득한데 왜 나는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눕는 것을 가장 큰 덕목으로 여기면서 살아왔을까.
어쩌면 출발이라는 것을 너무 거창하게 받아들였던 것은 아닐까? ‘작은 시작이 모여 큰 변화를 몰고 온다’ ‘시작이 반’이라는 식상한 잠언을 자신 있게 이야기해도 될 것 같다. 새로운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도 시작하고, 한동안 켜지 않았던 오디오에도 전원을 넣고 새 앨범을 구입해서 들어야겠다. 다르게 생각해보니 세상에는 아직도 시작할 것이 많이 남았다. 뭐든 시작을 해보면 결과는 따라오기 마련이다. 무작정 시작한 일의 끝은 어떨까? 이제는 결말이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린으로 컴백, 4분기 영화 기대작 4 (0) | 2022.09.28 |
---|---|
소설가 정보라의 현실 끝에서의 상상 (0) | 2022.09.28 |
올가을 새로운 아트 전시 4 (1) | 2022.09.23 |
벌써 섭섭한데요...? 입대하는 강태오의 짧은 머리가 놀라운 이유 (0) | 2022.09.21 |
내일을 만나다, 책방에 살다 (1) | 2022.09.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