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 26. 00:26ㆍ푸드
된장을 술술 푼 밑국물에 각종 야채와 들깻가루가 뭉근하게 어우러진 한국식 미꾸라지 탕, 추어탕. 구수하면서도 시원한 추어탕의 맛은 지칠 때마다 힘이 되어준 원기 회복 메뉴 1호, 아이들은 모르는 어른들의 맛이다. 직장인의 맛 지도, 삼카슐랭이 들고 온 추어탕 스토리엔 벌써부터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차오른다.
늦여름부터 포동포동 살 찌운 미꾸라지
"추어탕의 힘"
선조들은 해마다 늦 가을이면, 벼 수확이 끝난 논에 도랑을 치고 겨울 논의 동면을 준비했다. 도랑으로 물이 빠지는 동안 또 하나의 수확이 있다면 바로 영양 만점의 미꾸라지. 겨울을 나기 위해 영양분을 잔뜩 축적한 가을의 미꾸라지는 한국식 보양식의 상징, 추어탕으로 서민의 밥상에 올랐다. 다량의 단백질, 무기질은 물론 뼈와 내장을 버리지 않고 통째로 삶는 덕에 칼슘 함량 또한 우수하다.
정의로운 거지, '꼭지딴'의 추어탕
"밥은 빌어 먹어도 반찬은 절대 빌어 먹지 않는다"
조선시대 한양의 유명한 거지 집단, 꼭지딴. 포도청에서 인가한 관인 거지 조직이다. 이들은 궁중과 명문 대가의 길흉사를 담당하고 궁중 내의원에 개구리, 두꺼비, 지네를 잡아 납품하는 등, 거지 중에서도 우월감을 가지고 있어 나름 품위 유지에 힘썼다고 전해진다. 한양에서 유일하게 추어탕을 끓여 파는 일을 독점으로 행했다고 하는데, 이때 이들의 철학은 '밥은 빌어 먹어도 반찬은 빌어 먹지 않는다'는 것. ‘꼭지딴’의 품위를 유지해주는 유일한 반찬이란 바로 추어탕이었다. 이후 한양의 '꼭지딴 추어탕'은 남원과 더불어 조선시대의 추어탕에 대미를 장식했다.
솔솔 뿌리면 얼마나 맛있게요
"추어탕의 백미, 초피, 제피, 산초 가루"
축축한 논바닥을 어슬렁거리던 미꾸라지는 독특한 흙 냄새를 가졌다. 된장으로 밑국물을 하는 이유 역시 미꾸라지 특유의 잡내를 없애기 위함이지만, 이 외에도 먹기 바로 직전의 비법이 있으니 바로 '향신료'다. 가장 일반적으로 초피나무의 열매 껍질로 만든 초피 가루, 산초 나무의 열매로 만든 산초 가루다. '제피 가루'는 초피 가루의 경상도 방언으로 알려져 있다. 산초 특유의 향은 코를 살짝 찌르는 듯한 알싸함이 있고 예로부터 천식과 비염에 도움이 된다고 하여 약초로 쓰였다. 이 향신료로 숨겨진 추어탕의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지방색이 투철한 요리 비법
"전라도식 VS 경상도식"
산 미꾸라지는 소쿠리에 담아 소금과 호박잎을 넣어 3분 쯤 두면 미꾸라지는 서로 부대끼며 요리될 상태를 맞이한다. 이 미꾸라지를 삶아 으깨어 고사리, 토란대, 숙주나물, 파, 마늘로 질척하게 끓이는 방식은 경상도식. 전라도식은 된장과 들깨즙으로 걸쭉하게 맛을 내는 특징이 있다. 초피 가루로 알싸하고 매운 맛을 더해 먹는 것도 전라도에서 유래된 방식이다.
"시청역 남원추어탕"
돼지 뼈 국물을 진하게 우린 걸쭉한 추어탕. 시청역에 자리한 남원추어탕은 '내 영혼의 닭고기 스프'처럼 곱고 깊은 맛이 첫 숟갈부터 심신의 안정을 부른다. 식당 안에 들어서면 팔딱팔딱 뛰어 오르는 미꾸라지들이 커다란 고무통 안에서 손님을 반긴다.
통통하게 물이 오른 양식 미꾸라지 한 소쿠리
"한파에 어깨 쫙 펴지는 맛"
아삭 아삭한 배추 겉절이와 된장 고추는 추어탕의 깊은 맛을 한껏 돋구는 식감. 밑반찬만으로도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울 수 있는 손맛이다. 추어탕 뚝배기가 등장하면 부추를 가득 넣고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위에 산초 가루를 한 숟가락 뿌려 휘휘 저어 먹는다. 입 안에 퍼지는 부드럽고 구수한 풍미. 겨울철 원기 회복에 이만한 보양식이 없다.
추어탕 고수들의 맛 비법
"분주하게 먹는 맛이 제 맛"
추어탕은 분주하게 먹어야 제 맛이 난다. 첫 숟가락은 본연의 맛을 즐기되, 두 번째 숟가락부터 곁들이는 재료들을 다양하게 즐겨볼 것. 걸쭉하고 구수한 국물에 생 채소를 넣으면 씹는 식감이 훨씬 좋아진다. 여기에 다진 마늘, 청양고추, 후추, 산초 가루를 조금씩 곁들이며 먹다가 깍두기나 배추김치를 풍덩 담가 먹기도 한다. 뚝배기에 담겨 빨리 식지 않는데다 후후 불며 바쁘게 먹다 보면, 땀이 송송 맺힌 얼굴이 되기도 한다.
늦가을 살을 잔뜩 찌운 미꾸라지 한 소쿠리, 조선시대 꼭지딴의 왕초가 된 것처럼 없어도 당당했던 선조들의 기개를 추어탕 한 그릇으로 채워보는 것도 좋은 점심 메뉴 선택이 될 것 같다. 다음 삼카슐랭의 선택지는 어떤 점심이 기다리고 있을까.
시청역 남원추어탕
주소 :서울 중구 남대문로5길 3영업시간 :평일 10:00~22:00 (주말휴무)전화번호 :02-752-6320'푸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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